올해 1월 오슬로에서 겪은 일은 여전히 생생해 쉬이 잊혀 질 것 같지 않다. 우리대학과 오슬로 대학과의 자매결연을 추진하기 위해 오슬로 대학의 한 교수와 약속을 잡았다. 초행길이어서 너무 일찍 숙소를 나온 탓에 한동안 학교 앞 카페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수북이 쌓인 눈이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지루하진 않았다. 커피가 어느 정도 식을 즈음 정확히 세 명의 엄마와 세 명의 어린 아이들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고 내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상황은 정확히 이때부터 시작됐다. 방금 들어온 한 살쯤 되어 보이는 세 명의 아이들이 검은 외투,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검은 피부(내 중학교때 별명이 깜씨였다)를 가진 나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었다. 오슬로에 나타난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가 나만은 아니었겠지만 이제 세상구경을 시작한 그 아이들에게 나만한 구경거리도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고정되기 시작하면서 내가 느꼈을 황당함을 느끼기 시작한 그 어머니들이었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자세를 고쳐주고 아이들이 앉아있던 의자까지 방향을 바꾸어도 아이들의 시선은 여전히 나에게 꽂혀있었다. 아이들이 보? 甄?엄청난 호기심에 진정 놀라기도 하였지만 내가 본 그 아이들의 모습도 내 시선을 붙잡기 충분했다. 파란 눈동자와 금발, 눈보다 흰 피부, 성화(聖畵)에 자주 나오는 천사들의 모습 아닌가? (내가 가지고 있던 인종적 편견을 이 순간만큼 강하게 느껴본 적도 없다) 결국 얼마 후 카페를 나왔지만 지금도 그 아이들의 모습이 기억나고 과연 그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들에게 나는 (외계인 못지않은) 외국인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이 오슬로 방문에서 나는 뜻밖에 나는 누구이며 나와 그들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 생각하게 되었다. 한 인류학교재의 제목처럼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났다’. 우리는 서로 얼마만큼 같고 얼마만큼 다른가? 같고 다름, 과연 그 의미는 무엇일까?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 중 1억 명 이상이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고 있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동하는 사람들의 규모는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고 자본의 이동에 따라 단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정도로 이동 중이며 이른바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다. 2005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체류 외국인들의 수가 80만 명을 넘어서고 있고 비공식적인 경우를 고려하면 그 보다 더 많은 수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온 영어강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신문과 방송에 넘쳐난다. 동시에 전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 기업인들의 성공담과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들의 이미지들은 세계화, 국제화를 실감하게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얼마나 국제화되었으며 그 기준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화의 학생은 몇 명이나 외국으로 떠나야 하는가? 미국식 영어를 익히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곧 글로벌스탠다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국제화는 우리 안에서 발견되는 이질적인 차이를 대면하고 협상하는 능력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단순히 외국말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진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한류로 인해 이제 서울은 아시아인들에게 욕망되는 공간이 되었다. 리틀마닐라, 프랑스 마을, 몽골촌, 네팔인 거리, 이촌동 일본인촌, 저먼타운, 2006년 서울은 새로운 증후로 가득하다. 새로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이화도 예외일 수 없다. 많은 학생들이 외국으로 나가고 있고 동시에 외국학생들이 이화를 찾고있다. EGPP 프로그램을 통해 제3세계 국가 출신의 외국학생들이 이화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진정 다양성을 존중하며 개방적인가? 늘어나는 외국인 학생들의 수만큼이나 좀 더 진지한 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대학보에 실린 외국학생들의 모습이 혹 사진으로만 남는 것은 아닌가? 그들이 생활하는 이곳에서 글로벌스탠다? 恙?맞는 커리큘럼과 교육여건을 마련해야한다. 국제화에 걸맞은 학칙과 규정은 무엇인가를 따져보고 과감하게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새로운 학교 시설의 설립과 운영도 이에 발맞추어 나가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제화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행복한 것이어야 한다. 좀 더 넓은 자유와 행복,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노력으로 인정되는 것이어야 한다. 훗날 오슬로에서 만난 그 아이들을 이화에서 다시 만난다면....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김영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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