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영어강의 수를 확대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고대에서는 2016년까지 영어강의 비중을 31%에서 60%로 늘린다고 밝혔다. 한국학 등의 국어 관련 과목에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외국 대학들과 교류하며 서로의 교육내용을 교환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런 노력들이 계속되야 진정한 글로벌대학이 진행되고 한국의 인재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마다 전체의 ‘몇% 비율’에 초점에 맞춰 경쟁하는 것은 영어강의의 본래 의도에 부합하지 못한다. 실제 강의실에서 얼마나 내실있게 진행되느냐가 중요하다.

인도인 산치트 세라와트(20)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다니고 있다. 석박사 과정의 50%, 학부과정의 30%가 영어강의라는 말을 듣고 카이스트에 지원했다. 그러나 전공은 모두 한국어로 이뤄졌다. 실질적인 영어 수업은 ‘고급영어회화’하나 뿐이었다. 영어강의는 ‘영어를 가르치는’강의가 아니라 ‘영어로 진행되는’강의를 말한다. 영어강의를 한다고 대외적으로 말할 수 있으려면 외국인이 들어도 무리없을 만큼의 수준으로 진행되야 한다.

영어강의의 중요성은 본교에서도 인식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화에 입학하는 학생이라면 영어1은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이 수업은 원서 교재를 사용, 외국인·한국인 교수를 불문하고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도 한국어를 사용할 수 없다. 평가 기준도 영어 에세이·영어 듣기·영어로 된 필기고사다. 이렇듯 모든 것이 영어강의 형식을 갖췄지만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반응은 다소 회의적이다. ‘고등학교 때 영어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영어지문을 읽고 해석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시험도 본문의 단어 숙어를 완벽하게 외운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는다. 이는 수능 외국어영역을 해석하던 대학 이전의 수업들과 같은 양상이다. 물론 영어 발표 및 조별 토론이 있다. 그러나 영어 회화 교육이 제대로 선행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이러한 형태의 수업 방식은 부담일 수 밖에 없다. 해외거주 경험자들의 자유로운 영어구사는 다른 학생들을 위축시킨다.

이번 수강신청기간에 벌어졌던 ‘영2대란’도 이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영어1이 부담스러웠던 학생들은 연수를 다녀오거나 공부를 더 한 다음에 듣겠다며 영어강의를 미룬다. 개개인의 실력대로 반을 나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어가 능숙한 학생들이 반에 많으면 그 학생들만의 각축장이 되기도 한다.

필수과목 영어1·2의 수업이 요구하는 영어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는 신입생에 한해 면제시험을 실시하고는 있다. 이번 2006년 1학기에는 인문·사회·자연영역 입학생 총 1천260명 중 78명이 응시해 22명만이 시험에 통과했다. 1%도 안되는 극히 미미한 수치다.

학교는 영어강의를 만들어놓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실력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학생들은 연수·학원 등 학교 이외의 수단을 통해서 영어강의의 ‘점수’를 잘 따고자 개별적으로 애쓰고 있다.

영어강의가 많은 고대에서도 56%의 학생이 영어강의에 불만족하고 그 중 절반정도의 학생들이 영어수업 수준이 너무 높다고 말했다. 영어강의가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이러한 문제가 먼저 해결되야 한다.

우리학교에 개설된 48개 모든 영어강의에 적용하기는 힘들겠지만 영어1·2수업 부터라도 실력별 분반을 나누면 영어 편차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에서는 영어 잘하는 학생들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전공과목을 영어로 공부한 학생이 아니라 탁월한 의사소통 능력을 가진 인재다. 영어강의 비율을 늘리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영어강의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전문분야의 강의는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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