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후 1년간 느낀 것은

요사이 나는 「지피지기 백전백승」(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두드러기 날 정도로 싫다.

그 첫번째 이유는 지피지기의 「지」(지)를 「지」(지)로 썼다가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동료로부터 며칠째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른다」며 놀리는 그 사람한테 「빈수레가 요란하다」며 역공격의 자세를 취해 보지만 「그래, 아무것도 몰라」라고 자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속칭 「걸프사태」라 불리는 전쟁 때문이다.

지피지기와는 거리가 먼 최첨단 과학기술과 경제력으로 승리를 낚아내려는 다국적군. TV 앞에서 우리는 전쟁의 심각성이나 평화의 의미를 깨우치기보다 전자 오락과 같은 「전쟁 게임」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전쟁의 정당성 여부, 올바른 전쟁 해결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이라크나 아랍세계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최근 서점에서는 아랍 문명·역사를 다룬 책들이 불티나게 팔린단다.

하지만 그런 책들의 수준은 무척 저급해서 매스컴의 위력 앞에 거의 속수무책이다.

세번째 이유는 남녀불평등이라는 현실적인 벽앞에서 「지피지기 백전백패」임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입사한지 8개월, 직장초년생이라는 딱지를 벗어 버릴 때가 되자 차츰차츰 직장내 남녀불평들의 실체가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차별 임금, 차별대우, 여러가지 성적 폭력 등 책에서만 읽었던 일들이 매일 매일 사무실에서 일어난다.

입사동기로 들어왔건만 7년이 지나면 남직원은 「과장승진시험」을 보고, 여직원은 노처녀 딱지 붙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퇴직하는 경우가 많다.

또 호칭의 경우는 남직원들은 이름 석자 외우는 것이 귀찮고 싫어서 나를 「미스강」으로 불러 버린다.

비슷한 연배의 직원이라면 『이름을 불러주세요』라고 하겠으나 상사라면 속수무책 회사생활 무난히 하려면 두 눈 두 귀 꽉꽉 막고 있어야 한다.

목소리 큰 여직원은 감원 대상 제1호다.

자연히 여직원들은 화장실에서나 불만을 토론하는 데 해결책은 거의 전무한 상태다.

불평등의 실체는 알지만 이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이 남녀간, 학력간, 직능간의 차별을 필요로 하기에 지피지기면 백전백패를 가져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의 성(성)은 언제 어디서나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사무실에서 여직원에게 「꼭 물오른 버드나무처럼 싱싱하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는 남직원, 「여자는 걸레와 친해야 한다」며 책상 닦기를 요구하는 몰상식한 상사 앞에서 여성들은 심한 열등감에 빠지고 만다.

승진·상사와의 갈등 등의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남직원들은 명확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 해결책도 비교적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게 되는 불평등한 대우는 사회 전반적으로 공인된 만큼 이에 저항하려는 노력은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할까. 지피지기 외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해 나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지금까지 나는 지피지기란 말에 분노를 느끼는 이유로 세가지를 들었다.

그런데 이들 세가지 이유는 매우 「비합리적」임을 느낄 수 있다.

첫번째 이유는 나의 실력이 부족했던 까닭이니만큼 끊임없는 「자기개발」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

사회는 여성에게 남성 이상의 능력을 요구하고 잇다.

두번째 이유로 든 GULF사태. 이것은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올바른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분노하고 혀만 찰 것이 아니라 나의 의견이 올바른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세번째는 남녀불평등의 벽은 알면 알수록 그 벽을 허물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패배주의다.

이것은 여성 문제를 남성과의 적대 관계속에서 파악하기 때문이다.

남성을 여성문제 해결의 동반자로 삼으려는 노력, 이런 노력이 있을 때 여성 문제와 사회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동료 남직원이 짖궂게 굴면 올바른 충고를 하고 상사에게도 당당하게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목소리를 크게 하되 합리적인 이유가 아니면 동료 직원과 호흡을 맞추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한번 더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만이 여성들이 사회에서 대접받을 수 있는 길이다.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과 더불어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다.

나는 지(지)자로 아침 저녁 나를 놀리는 남직원에게 가끔은 커피를 탈 수도 있는 여유를 지니려고 한다.

그리고 대학에 있는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고대의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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