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작가와 후배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취지로, 권지예(영문·83년졸) 작가와 서수진(국문·06년졸)씨를 만났다.

‘프로’라는 이름을 걸고 언어의 마법을 펼치는 작가 권지예, 이제 막 발돋움을 시작한 아마추어 작가 서수진. 둘은 다른 듯 닮았다. 나이보다 앳돼 보이는 얼굴이 그랬고 조근조근한 목소리가 그랬으며, 무엇보다 가슴에 품은 정서가 그랬다.
10일(금) 후문 근처 ‘프린스턴 스퀘어’ 북카페는 두 작가 덕분에 더욱 진한 책향기를 풍겼다. 선배는 후배에게 해 줄 말이 많아 보였다. 후배도 선배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이것은 두 작가가 풀어놓고 공유한, 그들의 소설과 삶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에는 작가의 인생이 녹아 있다




서: 선생님 작품들, 「폭소」도 그렇고 참 재밌게 읽었어요. 작가 공부하면서 다시 읽었는데 다른 무언가가 보이더라구요. 요즘 화려하고 세련된 소설들은 익명성·도시성이 강조되고 굉장히 현대적이잖아요. 그런데 선생님 작품은 애틋한 정서가 있어요. ‘사랑’이나 ‘관계’ 등 고전적인 주제들, 그리고 삶에 대한 통찰이랄까요.
권: 꿈보다 해몽이 더 낫네.(웃음) 수진씨 소설 보고 나도 같은 걸 느꼈어요. 주인공 여자가 처음엔 도시적이고 깍쟁이 같기만 한데, 너무나 다른 모습의 여자가 등장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껴안잖아요. 어린 사람의 의식은 아닌 것 같더라구.
그리고 소설 속에 나오는 ‘피아졸라’의 탱고음악, 나도 좋아해요. 젊은 애 정서가 참 세련되고 성숙하구나 생각했죠. 소설 보다가 문득 피아졸라 음악이 듣고 싶어져서 노래 틀어 놓고 읽었다니까? 소품으로 쓰인 음악을 듣고 싶게 만든다는 건 그만큼 감각적이라는 거거든.
서: 저는 제 소설을 통해서 상처를 직시하는 법,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소박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생각해보면 딱히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자전적인 면이 있더라고요. 그래선지 친구들이 “너 얘기 아니야?” 이러면, 아니라고 하면서도 좀 움츠러들어요. 사람을 잃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소설을 통해 밖으로 내놓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해서.
권: 첫 작품일수록 자전적인 경향이 있어요. 어떤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자기 안에 있는 무언가를 표출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니까. 결국엔 자기 인생에서 느끼고 깨달은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죠. 나는 그것도 참 중요하다고 봐요. 문제는 소설가가 자신을 내보이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지 않느냐 하는 거지.
내가 중학교 선생님으로서의 안정적 삶을 버리고 프랑스 파리에서 8년 간 살았던 것도 모두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 였어요. 그때 느낀 이방인의 감정이 내 작품에 스며든 거고.
서: 저도 그런 생각 많이 들어요. 내가 경험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 직장생활도 한 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 쌓인 것 없이 글을 쓰려고 하니까 자꾸 내 바닥을 보는 듯해서요.
권: 그런데 너무 또 엄청난 경험 속에 들어가게 되면 거기에 너무 빠져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작가는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할 줄도 알아야 해요. 작가의 삶이란 참 모순적이에요. 경험도 중요한데, 경험에만 몰두하다보면 글을 쓸 수 없으니까.


인문학의 위기? 소설은 죽지 않는다


서: 처음엔 마냥 글 쓰는 게 좋았어요. 그런데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으니까 솔직히 생계도 걱정이 돼요. 아무리 계산해도 타산이 안 맞으니까요.
권: 요즘엔 신예작가 뿐만 아니라 기성작가들도 위협을 받아요. 일단 사람들이 작가에게 별로 관심이 없잖아. 자극적인 작품에만 잠깐 눈길을 주고 그냥 덮어두니까 문학에 대한 단계적 진화가 꾸준히 이어지지 않는 거지. 독자들의 새로운 입맛에 맞추다보니, 작가들도 쇼킹하거나 관심을 끌만한 소재만 찾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도 해요. 진지한 독자들이 있는 한 문학의 맥이 끊이지는 않겠지만.
서: 그래도 그만두고 싶지 않은 이유는 아직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내 삶에 위로가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작가가 되려는 생각을 한 게 중학교 2학년 때 신경숙 선생님의 「외딴 방」을 읽고 나서였거든요. 당시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힘들었는데, 외딴 방에서 아파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면서 꼭 내가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계가 점점 서로를 위하기보다는 개인화되고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소설이 저한테나 사람들한테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요.
권: 맞아. 인생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건 소설만한 게 없지. 행간을 곱씹으며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깨달을 수 있거든요.
책의 활자 하나하나가 나무라면, 책을 읽는 행위는 찬찬히 숲길을 걸어가는 일 같아. 나무들의 생김새를 살피고 향내를 맡으면서. 인생의 아주 섬세한 부분들의 잔잔한 결을 소설이 보듬어 주는 게 아닐까요. 책만이 줄 수 있는 위안 같은 거.


더 높이 날기 위한 날개짓을 하다


서: 그런데요, 선생님. 제가 지금 슬럼프에 빠져서 극복이 안 돼요. 여름에 신춘문예에 낼 단편들 쓰느라 너무 힘들었거든요. 작품에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데도 더 이상 손을 못 대겠어요.
권: 그럼 그건 그대로 나둬요. 다 쓴 작품을 손보는 건 불가능할 때가 많아. 쓰고 나서 계속 고쳐가는 작가들도 있지만, 나는 한 번에 몰아서 쓰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작품을 쓸 당시에 온 힘을 다해서 완성했다면, 그 작품은 자체 내의 질서로 이미 형성이 된 거야. 사람으로 치면 태아가 만들어 진거지. 그럼 어떡해. 마음에 안 들어도 낳아야지. 그리고 다시 예쁜 애를 만들어야지 않겠어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해결이 안 돼. 올해 한 작품도 못 썼어요. 스스로 변화를 겪어야 하는 시기인 것 같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있고. 작가는 늘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 회의가 들잖아요. 나도 머리 쥐어뜯지 않고 원하는 대로 글이 나오면 참 좋겠어.(웃음)
그런데 사실 단편 ‘뱀장어스튜’도 슬럼프 속에서 2년 동안 쓴 작품이었어요. 새롭고 실험적인 글을 쓰고 싶었는데 잘 안 써져서. 남들보다 0.1mm 진보적으로 쓰는 데 2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작가에게 슬럼프가 없다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걱정 말아요.
서: 왜 이렇게 마음이 조급해지나 모르겠어요. 얼른 등단해야 될 것 같고, 빨리 내 글이 만족할 수준까지 올라야 할 것 같고.
권: 스물다섯, 아직 어리잖아요? 나도 서른일곱에 등단했으니 늦게 한 편인데, 난 그랬어요. 빨리 등단한다고 해도, 바로 작품 활동을 이어갈 자신이 없더라구. 죽을 때까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여유로워지는 거야.
정미경 작가는 등단 전부터 준비하고 써 온 작품들이 컴퓨터 속에 쌓여 있었대요. 그러니까 등단 이후에도 비축해 둔 작품들을 계속해서 편하게 써내는 게 부럽더라. 등단 후에도 주목 받을 작품을 계속 써낼 만한 역량이 충분히 준비돼야 해요. 30대 초반에만 등단해도 늦지 않으니 너무 조급해 말아요.
서: 정말 큰 위로가 되네요. 선생님도 재능에 대한 회의를 느끼신다는 것, 또 슬럼프도 겪어봐야 할 과정이라는 말씀들도요. 내가 너무 급했구나, 당장 눈앞에 나오지 않는 결과 때문에 초조했구나 싶어요. 지금 좀 힘들어도 멀리 보면 나를 성숙시키는 과정이겠죠? 열심히 공부해야겠어요.
권: 수진씨를 비롯해서 이대 안에 작가 지망생들이 제법 있을 것 같아요. 어릴 때일수록 기본적인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해요. 나이가 들면 시간에 쫓겨서, 고전이나 철학책 같은 기본서들을 읽고 싶어도 시간이 안 나요. 그때는 오로지 능력을 발휘만 해야 돼.
그러려면 밑천이 없으면 빨리 끝나 버려요. 인생은 길어요. 자신이 얼마나 오래 멋진 글을 쓸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준비하는 과정을 길게 가지세요. 살아나가는 것 자체가 글의 재료니까. 앞에 닥친 인생을 최선을 다하기를.


권지예 작가는 1997년 ‘꿈꾸는 마리오네트’로 등단한 이후, ‘뱀장어스튜(2002)’로 이상문학상을 받고 ‘꽃게무덤(2005)’ 등의 작품집을 계속 출간하고 있습니다. 서수진씨는 지난 5월 ‘꽃이 떨어지면’으로 제1회 이화글빛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등단을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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