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담배를 한 대 ‘꼬나’ 물었다.
시장 토박이 이명랑에게 ‘담배를 핀다’는 잘못된 표현이다.
겉치레를 쏙 뺀 말투와 걸걸한 행동, 노련한 과일장수와 대학로 라이브클럽에서 마주하고 있자니 병맥주 대신 걸쭉한 막걸리를 시켜야 할 것 같다.
당장 다음날 아침부터 정신없이 장사를 시작해야 할 텐데 이 늦은 시각, 그는 왜 하필 대학로에서 만나자고 한 걸까. 시장아줌마와 클럽 취향을 억지로 연결시켜 보지만 영 어색하다.
7시가 되자 라이브클럽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문도 열지 않은 이른 시간부터 클럽 안이 분주했던 이유가 곧 밝혀질 모양이다.
객석이 꽉 차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에 등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명랑이다. 책 한권을 손에 들고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의자에 앉는다. 시장 아줌마의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다. 당당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소설 「슈거푸시」를 낭독하는 그는 26일(월) ‘제4회 문학나눔 콘서트’의 주인공이다. 이 순간만큼은 영락없는 작가다.
“어딜 가든 1973년 영등포 시장에서 태어났다고 꼭 밝혀요. 내가 왜 이런 소설을 썼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매번 설명하기 귀찮잖아요”
그는 분명히 서울토박이, 도시 아이다. 그러나 영등포, 그 중에서도 시장 출신이라는 점이 다른 서울 아이들과 다르다. 그는 영등포가 가지는 지역적 특성이 자신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양귀자의 소설「원미동 사람들」(2004)을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서울에서 버티지 못하고 낯선 땅으로 이동할 때 영등포를 지나간다. 시골 사람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처음 하차 하는 곳도 영등포다.
?“카네기 나이트클럽이니 영등포 원투쓰리니, 아직도 있는지 몰라”
서울이지만 가난한 동네, 어른들의 문화가 여과 없이 아이들에게 침투되는 서울 변두리, 영등포는 그런 곳이다.??
이명랑은 시장에서 태어나 시장 안에서 자랐다. 가난의 서글픔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시장 한복판, 그에게 영등포 시장은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었다. 가난탈출에 대한 간절함으로 악착같이 공부해 대학에 갔다. 그러나 대학원까지 나온 그는 결국 시장 사람과 결혼해 다시 시장으로 돌아왔다.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던 시장에 앉아 낮에는 과일을 팔고 밤에는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맞서 싸울 진짜 대상은 시장이라는 괴물이 아니라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헛된 욕망과 허영이었다" 데뷔작 「꽃을 던지고 싶다」(1998)를 시작으로 「행복한 과일가게」(2001), 「삼오식당」(2002) 「나의 이복형제들」(2004)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이 영등포 시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삼오식당」은 평생 밥장사로 세 딸을 키워낸 삼오식당 여주인과 사람이 그리워 공중 화장실 앞에 앉아 심술궂게 돈을 요구하는 똥할매 등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의 질퍽한 인생 얘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책속에 나오는 상호를 하나하나 더듬어 어렵게 시장입구에 도착했다. 「삼오식당」만 찾으면 되는데 어디에 숨었는지 여간해서 나타나질 않는다. 평범한 밥 손님인척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했더니, 「삼오식당」 여주인(이명랑씨 어머니)은 식당 앞까지 나와 손님을 맞는다. “누구 찾아 오셨수?” 「삼오식당」이라는 소설이 출간되고 일부러 식당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냥 밥을 먹으러 왔다는 손님에게 행여나 딸아이의 독자일까 그는 계속해서 관심을 갖는다.??????
「삼오식당」은 ‘삼호식당’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한쪽 벽에는 제육볶음, 비빔밥, 삼겹살 등? 형식상 메뉴판이 붙어있지만 사실 이명랑씨 어머니가 아침에 만든 음식이 그날 메뉴다.?
그릇에 밥이 넘칠 만큼 꾹꾹 눌러 담는 ‘삼호식당’ 여주인을 보자 소설 「삼오식당」의 인정많은 식당 아줌마가 떠오른다. 중풍으로 누워있는 남편대신 악착같이 식당일을 하며 자식들을 길러낸 애잔한 인생, 어디까지가 이명랑 어머니의 삶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몸빼바지에 꽃무늬 윗도리를 걸친 눈앞의 할머니를 측은히 여겨도 되는 건지 헷갈린다.?
“나는 정말 구라를 잘 치는 것 같아요”
자전적 느낌을 강하게 풍기다 보니 헷갈리는 독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나 보다. 책이 나올 때마다 그의 전화는 빗발친다. 첫 장편소설「꽃을 던지고 싶다」가 막 출간됐을 때다. 주인공 ‘량이’처럼 너도 자위를 하다가 처녀막이 터졌냐고 묻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구치소를 들락거리는 여주인공 덕분에 그는 여러 번 죄수가 됐다.
그러나 몽땅 지어낸 것은 아니다. 「삼오식당」의 둘째딸 ‘지선’은 분명 ‘삼호식당’의 둘째딸 이명랑이다. 「행복한 과일가게」에도 실제 과일장수 이명랑이 나온다. “소설에서 거짓말을 한 적은 없어요. 제 생활을 그대로 옮겼다는 게 아니라,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진실하게 담아냈다는 거예요”?
인터뷰가 끝나고 바로 이어진 ‘제4회 문학나눔 콘서트’에서는 그의 작품 「슈거푸시」(2005)로 이야기를 나눴다. 「슈거푸시」는 서로 손을 잡고 뒤로 갔다가 다시 밀착되는 라틴댄스의 동작으로, 유일하게 영등포 시장을 벗어난 작품이다. 대신 ‘춤바람’이라는 불온한 소재를 통해 억압된 한 여성의 일상 탈출기를 그린다. 라틴댄스의 기본인 토, 힐, 볼을 배우며 인생의 새로운 스텝을 꿈꾸는 주인공 소희는 1999년 일탈을 꿈꾸던 이명랑이다.
실제로 라틴댄스를 즐기냐는 사회자 고은주(소설가)씨의 질문에 “춤추러 가야하는데 소설 쓰느라 요즘 통 못 갔어요” 라는 발칙한 답변으로 객석을 흔든다. 많은 관객들 앞이지만 이미지 관리란 없다. 라틴댄스라고 고상하게 포장할 줄도 모른다. 그녀답다.?
이명랑은 과일을 아주 잘 판다. 아니, 장사를 아주 잘한다. 남들 한 달 매상을 하루에 벌기도 한다. 자기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둘러대지만 그를 한 시간만 만나보면 시장에서 길러진 그만의 독특한 근성을 발견할 수 있다.
“계속 날고기 같은 언어로 시장 삶을 그려줬으면 좋겠어요”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문학나눔 콘서트를 찾았다는 송인덕(서울예술대학? 22)씨. ‘과일장수 이명랑 작갗의 표정 하나를 놓칠세라 계속해서 플래쉬를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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