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대 미술학부, 디자인학부, 공예학부 '졸업작품전' 열려

조형대 A동 건물의 문 앞에는 조금 위압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조형물이 걸려 있다. 새까맣고 굵은 전선들과 쇠파이프가 얼기설기 얽힌 모습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괴생물체 같다. 군데군데 얹힌 백열등이 빛을 낸다.
외형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이 작품의 제목은 ‘생명의 나무 5’. 박지희(조소·4)씨가 대학생활 동안‘나무’를 주제로 만들어온 시리즈 작품들 중 마지막 것이다. 지금까지 이끼 등 자연친화적 소재들로 작업해온 것과 달리, 이번엔 전선을 이용해 나무 뿌리를 형상화했다. “이제까지의 작품들을 정리하는 의미의 작업이었어요. 인간적인 소재로 자연을 재구성해 보고 싶었죠.”
이처럼 A동 1층에는 조소과 학생들의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가득하다. 일관된 전시 주제가 없는만큼 작품마다 독특한 역량이 뿜어져 나온다. 잔디로 깎아만든 거대한 발, 관객을 소인국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는 커다란 여행 가방이 눈에 띈다.
2층 복도는 한국화과의 차지다. 조선 회화에서 본 수묵산수화만을 상상하면 금물. 갖가지 색으로 물든 한지와 캔버스에서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복도 한쪽에 세워진 병풍은 그 테두리의 고전적인 느낌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이다. 병풍에 그려진 외국인은 망사스타킹에 부츠를 신었다. 빨간 깃털모자를 쓰고 빨간 립스틱을 칠한 채 흰 드레스를 입은 한 백인은, 남자다. 미래적이고 톡톡 튀는 외국인들의 모습에서 퀴어 코드가 엿보인다.

복도 뿐만 아니라 각 층을 연결하는 램프길도 훌륭한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4~5층 사이 경사길 벽면에 남자 셔츠 모양의 흰색 주방 장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120여개나 된다. 앙증맞게도 까만 리본까지 달고 있는 이 작품의 제목은 ‘Reborn-Ribbon’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오승예(섬예·4)씨는 “리본은 여자만의 소유물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작품 구상이 시작됐다.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자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5~6층 사이 길에서는 뜬금없이 변기를 만난다. 문득 뒤샹의 ‘샘’이 떠오른다. 변기를 떠받치는 인공벽에는 낙서 투성이다. 가만 들여다보니 실제로 화장실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 옮겨놨다. ‘나 오늘 처음으로 낙서해 본다∼’는 문구가 익숙해 웃음이 난다.

회화판화과의 그림과 설치물에서는 실험 정신이 돋보인다. 3층에 올라오니 벽 모퉁이 구석에 낡은 서랍장을 둘러싼 흰 방이 있다. 서랍장을 제외한 방 안 풍경은 검은 테이프로 ‘그려진’ 것이다.
“주택가에 버려진 가구예요. 현대인들은 소소한 것은 다 잊고 사는 것 같아요. 가구가 버려지기 전 방에 놓였을 때의 평범했던 일상을 기억해내자는 뜻이에요.” 작품 ‘기억하다’를 설치한 민유미(회판·4)씨의 말이다. 흰 벽에 그려진 컴퓨터와 화장대, 흐트러진 옷들은 가구가 기억하고 있는 소소한 일상이다. 서랍장 위에서 빛을 발하는 자그마한 스탠드가 따뜻하면서도 왠지 애달프다.
이외에도 이화아트센터에 들어가면 도예과 졸업준비생 22명의 아기자기한 도자 작품들이 발 밑에 빼곡하다. 재기발랄한 수다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4·5층으로 가면 섬예과 학생들이 수놓은 오색찬란한 자수에 눈이 부시다.
디자인학부의 작품이 전시된 C동까지 돌아보면 웬만한 미술관 3군데를 관람한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지겹지 않다. 프로 작가가 아닌 같은 또래 학생들의 작품이라 그런지 못내 신기하다. 대학 시절의 열정을 담은 소중한 작품들은 ‘날 보러 오라’며 당당하게 소리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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