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학보를 보면 가슴이 뛴다
[교수칼럼] 학보를 보면 가슴이 뛴다
  • 이대학보
  • 승인 200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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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경 교수 (프랑스 문학전공)


내가 학부생이었을 때, 우리들은 학보가 나오는 월요일 아침을 손꼽아 기다렸다. 화요일이면 학보가 이미 동이 나버리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학보를 여러 부 집어가는 학생들을 방지하기 위해 학보사 기자들이 정문 앞에 서서 한 부씩만 배포하기도 했다. 우리들은 왜 그렇게 학보를 탐냈을까? 도대체 무슨 기사가 실려 있고, 무슨 소장 가치가 있는 보물이 숨겨져 있기에 학보를 가져가려 애썼을까?

그것은 학보가 교내 안팎의 중요한 정보뿐 아니라 마음을 전달해주는 고마운 우체부였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미팅을 하고 난 후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뜻을 쪽지에 적어 학보 속에 고이고이 접어 보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은 학보 속에 포개지고 포개졌다가 학보와 함께 두근두근 펼쳐졌다. 친구들 사이의 안부도 학보를 통해 오갔다. 학보에 띠를 둘러서 보내면 우표 40원 값만 들었다. 그 안에 편지를 넣어서는 안된다는 전제가 있었지만, 편지가 없는 학보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으랴. 우리들은 그렇게 이대학보도 읽고 고대신문도 읽고 연세춘추도 읽고 대학신문도 읽었다. ㅁ군의 고백도, ㄱ양과의 우정의 마음도, ㅇ군이 정성스레 베낀 싯귀도 그 학교 기사와 함께 읽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어쩌다가 단체미팅이라는 말을 썼더니 와하하하 웃는다. 우리과 학생 전체랑 타과 남학생 전체랑 통째로 카페를 빌려 미팅을 한 후 무수한 학보가 오고갔다고 말했더니 더 낄낄낄 웃으며 신기해한다. 요즘의 만남과 이어짐은 메신저가, 블로그나 싸이 방명록이, e-mail과 문자가 대신해준다. 여기에 담긴 표현은 순간적이고 즉각적이다.

하지만 학보는 우리를 기다리게 한다. 단 몇 줄의 쪽지가 완성되기까지 무수히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해야 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까지 도장찍힌 학보가 중앙우체국에서 분리되어 학교에 배달되고 다시 각 학과 사물함에 배분되는 시간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쿵거린다/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고 노래하는 황지우의 싯귀처럼, 기다리는 가슴 애리는 경험은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안다. 일 분이 한 시간 같고, 일주일이 영원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기다림의 순간과 조바심, 초조감, 애탐, 만남에 대한 두근거림,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궁금함이란! 바로 이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상대에 대한 내 생각이 무르익고 성숙해진다. 그렇게 해서 받은 쪽지를 읽고 또 읽으면서 우리는 행간에 숨겨진 그의 마음을 짐작한다.

후기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흔히 디지털의 세계가 갖고 있는 차가움과 각박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잉크의 시대에는 / 단어들조차도 / 보랏빛 향기를 품고 있었다”라는 프랑스의 시인 클로드 에스테반(Claude Esteban)의 싯귀처럼, 아무래도 문자판을 두드려서 전달되는 메시지에는 잉크냄새가 베어있지 않다. 기계는 인간의 애틋한 마음과 향기를 대신해줄 수 없다.


이어령의 ‘디지로그(digilog)’ 개념처럼 디지털은 아날로그와 결합될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상징되는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의 결합, 정보의 최소단위인 비트(bit)와 물질의 최소 단위인 아톰(atom)으로 상징되는 정보와 물질의 통합, 클릭과 브릭으로 상징되는 굴뚝산업과 온라인산업의 결합이 이뤄져야한다는 것이다. 차갑고 날카롭게 질주해가는 디지털 문명을 아날로그만이 다독거릴 수 있다. 새로운 기계를 움직이는 기술과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이 결합할 때 문명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인간에게 상실감을 주지 않은 채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아날로그의 세계는 과거를 회상하는 단순한 추억거리가 아니라 인간과 새로운 문명의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다.


나는 학보를 보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월요일이 되면 학보가 동이 날까봐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월요일 아침, 잉크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가을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학보를 펼치면 종이와 펜으로 정을 나누던 지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 학생들도 학보를 통해 기다림과 무르익음의 시간을 만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휴대폰과 인터넷이 전달해 줄 수 없는 마음 깊숙한 곳의 전언을 다시 신나게 배달하고 있는 학보의 모습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