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인이라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앗, 우리 학교 앞이다!’라고 외친 기억들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매일 지나다니는 익숙한 길도 브라운관 속에서 만나면 색다르고 반가운 법이다. 이대 주변은 촬영 장소로서 어떤 매력이 있을까. 적절한 촬영장소를 감독들에게 알려주는 ‘로케이션매니저’ 김태영씨, 그리고 몇몇 영화 감독들에게 촬영지로서의 이대 앞 분위기에 대해 들어봤다.

로맨틱코미디가 어울리는 정문 앞

김태영씨의 말에 따르면, 정문 앞은 여성적이고 발랄하다. 자유로움이 물씬 풍기는 홍대 앞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작은 악세서리처럼 아기자기하다. “만약 이대 문에서 CF를 찍는다면, 모델로는 성숙한 느낌의 전지현보다는 20대 초반의 이영아나 귀여운 느낌의 송혜교가 어울리겠네요”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 장르로는 ‘로맨틱코미디’를 추천했다.

실제로 2004년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S 다이어리’의 경우 이대 주변이 많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로맨틱코미디 영화다. 실연 당한 진희(김선아 분)가 차 안에서 훌쩍훌쩍 우는 장면에서는 이화인에겐 친근한 도넛가게와 도로가 보인다. 정문에서 신촌역까지 이어지는 거리다. 어둑한 하늘 아래 사람 한 명 없이 쓰레기차만 조용히 움직인다.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사람 많은 낮과 비교하면 사뭇 색다르고 의아하기까지 하다.

‘S 다이어리’의 권종관 감독이 촬영장소로 이곳을 택한 이유는 “길에 포스터가 걸려있고 쓰레기차가 지나가는 등, 슬픈 여주인공의 심정과 상반된 느낌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정문에서 이대역까지의 거리 등 이대 주변이 다양하게 나온다. 밤 장면에는 해가 져도 어둡지 않은 깔끔한 거리를, 낮 장면에는 젊은 활기가 넘치는 장소를 찾다보니 밤낮 모두 이대 앞을 촬영지로 정하게 된 것이다. 권 감독은 이대 정문 앞을 “생기 넘치는 거리”라고 표현했다. 가로등과 도로가 아담하면서도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느낌이 없다는 것, 또 현대적인 인테리어의 건물도 있으면서 대학가의 오래된 가게와 간판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돼 있다는 것이 그의 평이다.

서정적 분위기 물씬, 후문의 카페들


정문에 비해 주변은 상대적으로 고요하고 서정적이다. 이런 분위기에는 후문 주변의 오래되고 예쁜 카페들이 한몫을 한다. 김태영씨는 후문 쪽을 한마디로 “추억의 장소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가게들이 각각의 테마와 아이템이 있고, 오랜 시간 젊은이들과 함께 해 온 멋스런 맛이 난다는 것. “학교 졸업하고 10년 후에 남편과 함께 놀러와서 옛 시절을 그리며 커피 한 잔 마시면 딱 좋은 장소 아닌가요?”

후문 주변이 등장하는 영화 중 유명한 작품은 2004년에 개봉한 ‘광식이동생광태’. 철부지 광태(봉태규 분)가 옆 건물 카페에 앉아있는 이상형의 그녀 경재(김아중 분)를 발견하는 곳은 금화터널에서 이어지는 고가도로 위 버스에서다. 버스 창문 뒤로 언뜻 우리 학교 공과대학 건물이 보인다. 헤어졌던 광태와 경재가 다시 만나 추억을 되살리며 영화의 마지막을 따스하게 장식하는 곳도 이 카페다.

그밖에 후문 주변의 북카페 등 여러 카페와 금화터널 주변은 영화 ‘썸(2004년)’, 드라마 ‘12월의 열대야’ 등 많은 영상 매체에 등장했다.

한편 정문 앞에 옷가게들이 밀집돼 있는 일명 ‘마니아골목’ 주변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가게들 때문에 ‘일본틱’한 분위기가 난다고 한다. “명동하고 또 느낌이 달라요. 명동 뒤쪽의 좁다란 골목, 그 정도 느낌이랄까요”라고 김태영씨는 말한다.

김세훈 뮤직비디오 감독은 2004년 말 이현도의 ‘힙합구조대’ 뮤직비디오를 여기서 찍었다. 그가 이곳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신선하고 자유분방한 이미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많이 고민하고 장소를 택한건 아니었고, 그때 출연한 이현도·김창렬·MC 스나이퍼 등 힙합하는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다 보니까 이대 앞에서 찍게 됐어요. 젊은이들이 편하게 모이는 장소잖아요.” 골목에 약간 경사가 있어서 여러 명의 출연자들이 골고루 보이는 장점도 있었다.

지금도 이대 주변은 계속해서 카메라 앵글에 담기고 있다. 어느 날 학교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있다면, 곧 브라운관에서 학교 앞 거리를 만날 수 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