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위기 극복하기 위한 '인문주간' 학술대회 본교서 개최 교육프로그램 혁신 및 새로운 매체와의 연계 등 구체적 · 현실적 방안 논의

인문학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학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학술진흥재단과 전국인문대학장단은 9월26일(화)∼30일(토) ‘열림과 소통의 인문학’을 주제로 ‘인문주간’ 행사를 진행했다. 이 중 개회식과 학술대회가 처음 이틀간 본교 국제교육원 LG컨벤션홀에서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탁상공론이 아닌 보다 발전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그동안 인문학자들이 자기 반성 없이 인문학 침체를 사회의 변화 탓으로만 돌렸다는 일부의 비판을 받아들인 것이다.

교수와 대학원생 및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대 박성창 교수(국문학 전공)·고려대 윤재민 교수(한문학 전공)·본교 김혜숙 교수(철학 전공) 등 6명의 교수는 현 상황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방안을 모색하는 글을 발표했다.

김혜숙 교수의 발표는 ‘나는 내가 보는 모든 것이 거짓되다고 가정한다’는 철학자 데카르트의 글과 함께 영화 ‘매트릭스’의 일부를 상영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영상이 끝나자 김 교수는 “영상 매체인 영화에 철학적 사유가 가미된 좋은 예”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발표 제목은 ‘인문학과 디지털 문화’. 김 교수는 문화콘텐츠가 다양하고 디지털 매체가 발달한 시대에서 인문학적 정보는 매우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역사 드라마나 영화 또는 문학작품에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서사’의 생산은 문화가 중시될 미래 사회에서 특히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글을 읽고 쓰는 일에 집중해 온 인문학은 ‘디지털 글쓰기’라는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전공자들이 인문학적 지식과 정보를 활용해 사회와 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통합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교수들의 발표문에서도 학계의 반성과 새로운 대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연세대 신경숙 교수(영문학 전공)는 “인문학이 우리 일상에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효과를 주는지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며 인문학의 새로운 경영 방식을 내세웠다. 또 서강대 임상우 교수(사학 전공)는 인문학의 실용성을 강조하며 교육과정 및 교육내용을 혁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종합토론 시간은 이틀간의 발표를 정리하는 자리였다. 인문학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현실적 방안들도 논의됐다. 김혜숙 교수는 “인문학을 전공한 후 진출할 수 있는 직종을 학생들에게 적극 홍보하고, 인문학 졸업생들이 유용하다는 것을 기업에게도 피력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한 청중은 “현재 시간 강사의 절대 다수는 인문학 전공자다. 학문을 이어나갈 후배 양성을 위해 시간 강사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이 문제에 교수들이 신경써주기 바란다”고 말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사회를 맡은 정재서 교수(중문학 전공)는 시대 변화에 걸맞는 새로운 인문학의 패러다임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한편 26일(화) 개회식에서는 이어령 명예교수(인문과학대학)가 ‘학문의 수원지가 마르고 있다’는 제목의 기조강연을 했다. 그는 모든 학문의 수원지인 인문학이 마르면 사회(Society)·기술(Technology)·경제(Economy)·정치(Politics) 곧 ‘스텝(STEP)’이 ‘페스트(PEST)’로 변한다며 “똑같은 글자라도 순서가 바뀌면 뜻이 달라지는 것처럼 학문의 첫 글자였던 인문학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나라 전체가 역병에 감염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인 전국의 인문대학장 40여명은 ‘오늘의 인문학을 위한 우리의 제언’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남대 윤평현 인문대학장이 대표로 성명서를 낭독했다. 자기 성찰과 현실 참여가 부족했음을 인정한 그는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가 인간의 존엄성을 황폐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문학의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은 시장논리에 영합하지 말고 인문교육에 충실해야 한다 △정부는 인문학진흥기금을 설치해야 한다 △교육부총리 산하에 인문한국위원회를 설치해 중장기적인 발전을 실천해야 한다 △국가 주요 정책위원회에 인문학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전국인문대학장단·학계 등이 함께 참여하는 인문학발전추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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