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르네상스적 인간형
21세기 르네상스적 인간형
  • 이대학보
  • 승인 200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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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고안한 기계를 이용해 빈대떡같이 넓적했던 면 반죽 덩어리를 실처럼 길게 뽑아 끓는 물에 삶았던 사람. 그는 이를 ‘스파고 만지아빌레spago mangiabile’, ‘먹을 수 있는 끈’이라 부른다. 그리하여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즐기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 스파게티가 생겨난다. 이를 탄생시킨 사람은 와 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한 천재의 은밀한 취미』에서는 다빈치의 끝도 없는 호기심과 무수한 발명의 성공과 실패담을 읽을 수 있다. 미술가, 과학자, 건축가, 발명가, 사상가, 요리사 등의 다양한 분야를 직업으로 가진 다빈치는 빛나는 상상력을 통해 미와 진리를 조화롭고 균형 있게 결합한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다빈치가 남긴 여러 노트에 인용되는, 다빈치에게 많은 지적 자극을 주었던 르네상스인은 레옹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였다. 다빈치 보다 48년 전에 태어난 그는 구두 수선공이자 문학가, 수학자, 건축가, 작곡가였다. 르네상스의 진원지 피렌체에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을 건축했고 『건축론』, 『회화론』등을 저술했다. 그는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이었던 원근법을 수학적 물리학적 계산과 분석을 통해 설명하면서 예술과 과학을 접목시켰다.
폴란드인 코페르니쿠스는 다빈치 보다 21년 뒤에 태어났다. 그는『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tum Coelestium』를 통해 지동설을 주장하여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정립된 천동설을 극복하는 근대 과학혁명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와 이탈리아에서 법학, 의학, 수학, 신학, 고전문학을 공부했고, 이후 성당 참사원으로, 의사로, 군인으로의 다양한 경험을 했다.


15-16세기 르네상스기는 만능인uomo universale을 대거 배출하였다.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의 섭렵뿐 아니라 육체적 건강과 도덕을 고루 갖춘 이상적인 인간형이었다. 그들은 신 중심의 중세문화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자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유산을 재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그들은 학문을 넘나드는 지적 호기심과 열린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독창적으로 묶어내는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르네상스적 인간형이 21세기 새로운 인간형으로 부각되고 있다. 15-16세기 르네상스 이후 상업,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21세기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임과 동시에 다방면에 열린 지식의 네트워크를 갖춘 새로운 르네상스적 인간을 요구한다. 21세기로 막 접어든 지금, 우리는 인문학과 과학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제2의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셈이다.


21세기 르네상스적 인간은 열린 사고방식을 지니고,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창조적으로 조화롭게 묶어내는 융합형 인간이다. 인류는 매뉴얼적인 인간형에서 창조적인 인간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실험성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새로운 것,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력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 시대는 끊임없이 통합적이고 연계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원한다. 대학에서 연계 전공, 복수 전공, 부전공, 주제통합형 과목들을 장려하는 것도, 학자들이 서로 경계를 넘어 학제간 연구를 시도하는 것도 이런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기존 지식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축적되는 통합적 지식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 상상력이 새로운 지식과 창조적 문화의 씨앗들을 잉태한다.


주제통합형 교양수업에서는 올해 2회째 우수 과제물 전시회를 한다. 다양한 전공이 섞여 있는 학생들의 작품에는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거침없고 풋풋하며 신선한 상상력이 다채롭게 표현되어 있다. 다빈치가 다양한 기계를 제작하고 새로운 요리를 만들면서 실험과 실패를 되풀이했던 것처럼, 학생들의 창작물에는 괴로움과 고민과 수많은 불면의 밤의 흔적들도 묻어있다. 학생들은 이 경험을 통해 문화 창조와 21세기 르네상스적 인간의 어려움과 기쁨을 동시에 맛보았을 것이다.


어느새 한 학기가 끝나가려 하고 있다. 겨울방학에 읽을 교양서적 목록을 작성하거나, 다양한 문화 체험을 쌓을 계획을 미리 세워 보자. 15세기 이탈리아의 인문학자 조바니 피코델라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ndola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의 자유 선택에 따라 자신을 만들어 간다.” 모든 이화여대 학생들이 저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자 유연한 사유를 토대로 창조적 문화를 만들어 갈 21세기 르네상스적 인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조윤경 교수 (불문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