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간’ 행사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끝이 났다. 정작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본사는 ‘인문학의 현주소와 가캄를 주제로 9월29일(금) 좌담을 마련해 학생과 교수의 생생한 대화를 들었다.
이날 좌담에는 김혜숙 교수(철학 전공)·김수린(국문·4)씨·김은영(철학·2)씨·황선경(사학·3)씨가 참여했다.

김은영(철학·2)씨
“이수해야 하는 필수과목 많아 전공 탐색의 기회 부족해”

황선경(사학·3)씨
“사학과 진학생 줄어드는 것 볼 때 위기감 느껴”

김혜숙 교수(철학 전공)
“인문학을 공학·예술적 측면과 조합시켜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무기로 만들어야”

김수린(국문·4)씨
“인문학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자본주의 발전이 가져온 인간의 상품화”


인문학 선호도가 낮아지고 있는 이때, 어떤 계기로 인문학을 전공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김수린(수): 막연히 독서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국문과를 선택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어 만족스럽다.
황선경(선): 고등학교 때 국사 선생님이 정말 재밌고 잘 가르쳐 주셔서 국사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방송 쪽에도 관심이 많아 처음에는 신방과를 가려 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기술은 취업 후에도 배울 수 있으니 대학 시절에는 그보다 본질적인 것, 콘텐츠를 배우는 게 좋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좀더 근본이 되는 학문을 배우고자 사학과에 왔다. 나중에 ‘대장금’같은 사극을 제작하는 것이 꿈이다.
김은영(은): 고등학교 때 ‘윤리’를 좋아했다. 윤리 선생님이 되고 싶어 수시모집 전공예약제로 철학과에 왔다.
김혜숙(교수): 은영이는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다. 스스로 원해서 철학과에 온 학생들은 10명도 채 안 된다. 몇 백 명이나 되는 인문대생 중에 철학을 전공하고 싶은 학생이 얼마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모두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진학한 것 같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인문학의 위기’를 실제로 느끼는가.
수: 아직 취업이 닥치지 않아선지 직접 체감하진 못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간혹 “국문학 공부해서 뭐 해 먹고 살래?”라고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럴 땐 정말 답답하다.
선: 올해 사학과에 진학한 05학번 학생은 10명 정도 뿐이었다. 이렇게 순수 인문학 전공생 수가 계속 적어지다가는 언젠가 수명이 다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이 느껴지더라.
은: 10명은 차라리 부럽다. 철학과는 5명쯤 된다.
교수: 인문학이 더 이상 의미있는 학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점차 전공자 수가 줄어드는 것이 위기가 아닐까. 또 인문학이 사회적 실용성을 갖추지 못한다는 생각도 문제다. 이는 인문학 졸업생들의 낮은 취업률과도 연관된다.


그동안 인문학이 시대에 맞는 내부적 변화를 꾀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수: 인문학의 위상이 떨어진 근본적 원인은 자본주의로 인한 인간의 상품화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을 상품으로 여기다 보니 인간 자체에 대한 본질적 탐구가 무의미해진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인문학과 다른 학문 사이의 소통이 필요하다. 철학 전공수업인 ‘문학철학’처럼 다른 전공과 연계한 과목이 적다는 게 아쉽다.
선: 사학과에서 ‘역사학과 방송’이라는 계절학기 과목을 개설했었다. 수업 시간에 역사 드라마·다큐멘터리 제작 현장으로 현장학습을 갔는데 굉장히 재밌었다. 역사 지식이 실용학문인 언론 및 방송과 결합돼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인문학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문학적 가치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은: 학생들이 인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접근성도 높여야 한다. 학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학이 어렵고 복잡하다고 느껴 거리를 둔다.
교수: 학생들에게 철학의 재미를 알려주고자 수업을 개설해도 수요가 없어 폐강되기 일쑤다. 은영이 말대로 선입견 때문인지….
수: 우리 학교의 경우 다른 대학에 비해 선배들이 신입생들의 전공 및 수강 선택에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강의계획안만으로 강의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어렵지 않나. 선후배 간의 연계를 높이거나 과목 소개에 대한 세미나를 활발히 진행하는 것도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교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이 먼저 후배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기 바란다.


논의가 본교 중심으로 모아지는 것 같은데 좀더 구체적인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선: 사촌동생이 입학한 타 대학의 인문학부 신입생들은 1학년 때 ‘역사의 이해’·‘문학의 이해’ 등 전반적으로 인문학 수업을 듣는다고 한다. 이를 통해 관심이 없었던 전공일지라도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것이 학부제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학부제의 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인문학부 내에서도 특정 과에만 몰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학교에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
은: 맞다. 뿐만 아니라 국어와작문·주제통합교양·교양영어·제2외국어 등 필수로 들어야 할 교양과목이 많아 1학년 때는 자기가 듣고 싶은 과목을 제대로 들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전공을 탐색해 보지 못하고 전공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제도적 수정이 필요하다.
선: 궁극적으로는 인문학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이 창출돼야 인문학과의 인기가 다시 높아지고 인문학도 성장할 수 있다. 기업의 전공제한 제도도 철폐됐으면 한다. 회사에서 경영·경제 등 특정 학과를 선호하다보니 학생들이 점점 더 인문학을 기피한다.
수: 장학금 지원도 중요하다. 현재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안심하고 학문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해줘야 한다.


인문학도로서 그리고 인문학자로서 인문학을 다시 살려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자신이 생각하는 인문학의 가치와 의의를 말해 달라.
수:인간의 상상력과 판단력이 중요한 시대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필요한 정보는 어디에서나 쉽게 얻을 수 있다. 그 많은 정보 중 어떤 정보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결정은 인문학적 소양이 갖춰져야 가능한 것이다.
은: “철학은 다른 학문과의 연관성이 매우 높아 역사에는 역사철학을, 정치에는 정치철학을 적용할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을 들었다. 이처럼 인문학은 사회의 모든 분야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유연하고 다양한 적용이 가능한 인문학은 영향력이 큰 학문이다.
교수: 학문 간 연계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자. 미래에는 문자에 음악·그림 등 다양한 매체를 결합시킨 디지털 글쓰기가 각광받는다. 이제는 상품 하나를 만들어도 그 속에 이야기와 아우라가 있어야 팔린다. CF가 점차 서사적 구조를 갖춰가는 것이 그 예다. 인문학 전공생들은 이런 공부를 함께 해 스스로의 능력과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이 가능해진다.
선: 또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사람 냄새 나는 사회를 조성하기 위해서도 인문학은 꼭 필요하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따뜻한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교수: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인문학의 진수를 얻을 때까지 마음껏 공부했으면 좋겠다. 일단 인문학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다면 인내를 갖고 학문에 대한 전반적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대학 시절 학문에 매진해 인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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