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왔다. 외롭게 홀로 남은 작은 딸을 돌보기 위해, 어려서 집을 나간 큰 딸에게 사과하기 위해, 죽은-죽었다고 믿었던 어머니가 돌아왔다. 스페인 감독 알모도바르의 영화 <귀향>은 돌아온 어머니의 이야기, 어머니와 딸들의 이야기, 그리고 여성들 간의 연대와 우정의 이야기이다.

아빠가 돌아왔다. 12년의 부재에 대해 침묵하며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시 나타난 낯선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권위를 가르친다. 러시아 감독 즈비야긴제프의 영화 <리턴>은 돌아온 아버지의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아버지의 권위를 불편해하고 끝내 거부하려고 하는 아들의 이야기이다.

두 편의 영화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귀환을 다루고 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기묘하게도 서로를 비춘다. 그것은 공존하면서도 나뉘어 있고, 갈등하면서도 보완하는 두 개의 질서를 드러낸다.

주인공들의 고향, 라만차에는 바람 때문인지 광인들이 많다고 영화 <귀향>에서는 말한다. 유령을 믿는 사람들. 거기서는 유령조차도 이 세계의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엄마는 돌아올 수 있다. 강간과 살인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일상의 공간, 고단함이 고스란히 반복되는 삶, 비밀스런 과거와 상처받은 기억, 그러나 여성들은 서로를 위해 거기에 있다. 이유를 묻지 않고 즉각적으로 도울 수 있고, 그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특별한 위로나 별스런 행동 없이도 엄마는 딸을 위해 그냥 거기에 있어주길 원한다. 서로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작은 돌봄의 연대가 그 끔찍한 비밀들이 떠받치고 있는 고단한 삶을 유쾌하게 만든다. 엄마가 돌아온 공간은 그곳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귀환은 다르다. 이제 막 자의식이 성장하기 시작하는 아들들 앞에 12년 만에 나타난 아버지는 불편하다. 낯선 아버지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지켜주던 안온한 소년들의 가정에서 주인행세를 한다. 식탁의 중앙에 앉아 불편함을 감춘 가족들에게 자신이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음식을 나누어주고 명령을 한다. <리턴>은 관계의 방식을 습득하지 못한, 아들들과 무엇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모르기에 더 권위적으로 행동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부재보다 귀환이 더 불만스러운 아들의 대립을 보여준다. 설명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과거의 빈 시간은 아들들이 아버지와 함께 떠난 여행의 공간인 황량한 바다, 그들을 내리치는 빗줄기처럼 영화를 지배한다. 그래서 그 귀환은 불편하고 긴장되어 있고 증오로 가득 차 있다.

이 두 영화에서 아버지들은 죽는다. 강간하려는 아버지를 응징한 딸을 지켜주려는 어머니에게 죄책감은 없다. 그녀는 딸의 죄의식을 기억 속에서라도 지워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바닷속에 잠긴 아버지의 시신과 아버지가 간직한 비밀처럼 아들들의 내면에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이 두 편의 영화가 그려내는 어머니의 질서와 아버지의 질서는 무엇인가? 어머니에게는 돌봄을, 아버지에게는 강압과 권위를 배분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을까? 왜 이 감독들은 딸들에게는 어머니와의 우정을, 아들들에게는 아버지와의 긴장을 가장 핵심적인 성장의 기제로 채택했을까?

가정을 흔히 평안한 안식처, 가장 가까운 관계의 배려적 공간으로 표상하지만, 실제로 비밀이 없는 가정은 거의 없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밝히지 못한 상처와 벗어나지 못하는 애증에 매어있다. <귀향>의 어머니가 딸들과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가 돌아온 이유를 감추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딸에게 용서를 구하고, 가정을 안전한 곳으로 지켜주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감추어진 비밀을 밝힌다. 그래서 죽었던 어머니는 돌아와서 산다. 그러나 <리턴>의 아버지는 설명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못한다. 이유는 감추어져 있고, 납득할 수 없는 아들들에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 편이 더 나은 존재이다. 아버지는 아마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강한 남자로’ 세상에 맞서야 한다고 아들들에게 강압적으로 가르치는 것처럼 그도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는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거나 애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렇게 아버지는 먼 방랑을 살고 돌아와서 죽는다.

어머니의 질서와 아버지의 질서가 고정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가까운 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다가가는 방식이다. 두 영화는 같은 제목을 갖고 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또 다른 영화의 ‘귀환’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대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두 질서, 두 관계 방식의 비교였다.

김애령 교수(철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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