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대신 “안녕하세요”가 더 익숙하게 흘러나오는 사람. 한국인처럼 그럴싸한 억양과 말투를 구사하는 그롯트 파스칼(Grotte Pascal) 교수(일본어 전공)다.

그는 현재 본교의 통번역대학원 한불학과 교수지만 실제 전공은 일본어, 복수전공은 한국어다. 한국 근대사를 연구하고 국사편찬위원회의 요청으로 구한말 프랑스 외무부문서의 한국어 번역을 교열하고 있다. 그런 그가 한국 근대사 박사 논문을 통해 근대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색다른 주장을 펼쳤다.
그롯트 교수는 논문에서 고종이 ‘위성형 외교’를 통해 일본의 억압에서 벗어나려 했다고 주장했다.
고종이 머물던 경운궁(덕수궁) 주변은 롱동호텔(호텔 뒤 빠래)·정동호텔(손탁호텔), 미국·영국·러시아·프랑스 공사관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고종은 각국 공사관에 심복을 보내 밀서를 전달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두 호텔들은 고종의 문서 보관소와도 같았다. “인공위성처럼 경운궁을 중심으로 각국 공사관·호텔 사이에 비밀외교가 진행됐죠”그는 고종의 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또한 고종은 조선 철도망을 남만주까지 연장된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연결하기 위해 프랑스·러시아와 연합했다. 이는 대한제국이 동북아시아의 국제 무역 중심지가 돼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궁극적으로는 독립국가가 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고종의 야심 찬 계획은 일본의 동맹국이었던 영국의 방해로 실현되지 못했다. 영국이 일본의 요청으로 프랑스의 자금 원천이던 윤난 신디케이트(금융기관)에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고종을 일제에 나라를 뺏긴 무능한 왕이라고들 하지만 그는 강대국 사이에서 주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 했지요. 그의 이런 면이 등한시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프랑스인인 그는 언제부터 한국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됐을까? 한국과의 인연은 파리 제7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던 중 친구의 권유로 한국어를 복수 전공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공부하면서 한국·일본을 자주 오가게 됐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한일관계에 주목하게 됐다.

한국 여성과 결혼하면서 한국에 정착한 지 13년이 돼간다. 그동안 숭실대학교·숙명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 6년 전부터 본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여학생들만 있다 보니 몸가짐이나 발언 등 신경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화가 날 때 행여나 “자네, 와이러노”라는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나올까 조심스럽다.
처음에는 아는척 하는 학생이 거의 없어 ‘왜 학생들이 나를 무시하나’라는 생각마저 했지만 지금은 스승의 날에 많은 카드를 받을 정도로 인기인이다.
그는 한·일 관계와 한국 역사를 평생 공부할 계획이다. 다음으로 도전할 연구는 ‘대한제국 시대 명성왕후의 본질적 역할’이다. 개인적 관심에서 시작한 연구, 그 속에는 한국에 대한 한 프랑스인의 애정과 사명감이 담겨 있다. 다음에는 그가 또 어떤 색다른 이론을 제시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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