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대학평가, 학교 기자재 · 논문 수 등 양적 평가에만 치중 전문성과 타당성 결여를 이유로 일부 대학 대교협 평가 거부하기도

여기저기서 발표되는 ‘대학평가 결과’,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서울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학평가를 거부했다. 특정 학과 교수들이 집단으로 평가를 거부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대학평가, 왜 대학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현재 국내에서 대학평가를 수행하고 있는 기관은 교육부·대교협·언론사 등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대교협 평가와 언론사 평가가 문제 되고 있다.
대교협 평가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받고 있는 것은 수치 중심이다. 평가 기준이 학교 기자재·논문 실적·수상실적·학생과 교수의 비율 등 지나치게 양적 부분에 치중돼 있다.
대학연구소 이수연 연구원은 “수치를 앞세운 평가는 결국 다양한 대학들의 특성을 무시한 채 대학의 서열화를 조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의 특성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평가도 문제다. 규모나 지역이 다른 대학들을 획일적인 기준으로 평가한다. 지방 신생 학과의 경우 뚜렷한 양적 지표로 보여줄 만한 성과를 낼 여건이 안될 수 있다. 이런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평가는 학문 간 균형 발전에 도움을 주기보다 대학과 학문 서열화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평가에 필요한 행정 업무로 연구 및 수업 준비에 방해를 받는 교수들도 많다. 서울대 신문수 교수(영어교육학 전공)는 “평가를 위한 자료를 준비하는 데만 1학기 정도가 걸린다”며 실제로 활용되지 않는 자료 준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반면 평가 결과가 직접적인 학문발전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학은 ‘순위’에만 관심을 갖는 등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교협 평가에 대한 불만은 대학의 평가 참여 거부로 표면화되고 있다. 전국 대학 사회학과는 작년 2월23일(수) ‘전문성과 타당성 결여·수치 중심의 양적 평갗를 이유로 대교협 학문평가를 거부했다. 2003년에는 경제학과와 물리학과가 평가를 거부했고, 한국불어불문학회·영어영문학회 등도 지속적으로 평가를 거부하고 있다.

언론사 대학평가 또한 불필요한 순위 경쟁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앙일보는 1995년부터 창간 기념사업의 하나로 전국 대학평가를 실시 하고 있다. 수요자의 알권리를 충족시킨다는 취지이며 설문지를 통해 정량적 지표를 만든다. 동아일보도 한시적으로 두 차례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특정 언론사가 대학을 평가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연구원은 “독자들은 대학의 서열화에 관심이 많다”며 “언론사는 독자들의 흥미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대학 평가 순위에 치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미 100여 년에 걸쳐 대학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은 우리나라와 상이한 특징을 보인다. 미국의 평가기구는 비정부 조직이다. 평가 기준의 주안점은 대학의 독자성과 다양성에 기초한 자체 발전 노력 확인에 둔다. 6개의 지역별 종합평가와 70여개의 학문분야별 프로그램 평가 운영이 그것을 입증한다.

대교협 평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부는 한국고등교육평가원(평가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따라 그동안 산발적으로 이뤄졌던 대학평가는 교육부 중심으로 통합될 예정이다. 대교협과 정부의 지원을 받았던 기관평가는 평가원이 모두 담당하며 학문별 평가와 BK21 사업은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올 9·10월 정기국회에 법률안을 상정할 예정이고, 이것이 통과되면 6개월 정도의 정비 기간을 거쳐 내년 하반기 중 설립된다.
평가원의 대학평가는 순위 경쟁을 지양하고 자기개발을 목표로 한 컨설팅 위주의 평가로 이뤄질 방침이다. 또 신청 대학만을 대상으로 하며 교육 성과에 비중을 두고 진행된다.
교육부 황성환 교육행정 사무관은 “지역이나 학교의 규모·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평가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보고서 작성에 소모되는 많은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안도 고려 중이다. 자체 보고서에 포함되는 기본적인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쓸데없는 정보를 평가하는 평가 항목은 줄여나가려는 것이다.

한편 평가원 설립에 대한 우려의 입장도 있다. 이수연 연구원은 “대교협에서 하던 평가를 교육부에서 일임하는 것에 그친다면 평가원의 존재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기준과 평가 방법에서 지적되는 비판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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