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당락을 좌우 한다” “합격을 위한 수험생의 필수 선택-논술”

몇 해 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난 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논술 학원 광고다. 수능이 끝나면 고3 수험생 또한 입시 중압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동안의 사회적 통념이었다.

그러나 논술이 대학 합격을 좌지우지 한다는 입시 전문가의 말에 의해, 고3 수험생들은 수능을 본 후 또 다른 입시를 준비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대학입시와 관련된 학원 범주에 국·영·수 외에 ‘논술’을 추가하게 됐다.

논술 고사란 창의력·전문력 등의 고차원적인 사고능력을 평가하는 탈교육적·범교과적 성격의 논문식 시험이다. 이것은 수능 시험의 맹점인 암기식·주입식 교육에서 탈피·보완하기 위해 1997년에 도입됐다. 1999년부터 대학 입학 전형 중 논술 비중이 커지면서 논술 교육의 수요가 생겼고, 이는 곧바로 거대한 사교육 논술 시장을 창출했다.

8일(금) 2008학년도 서울대학교 입시요강이 발표된 후, 논술 사교육 시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입시요강의 주요한 특징은 수능이 자격고사로 활용되며, 논술 반영 비율이 10%에서 30%로 상향된 것이다. 12일자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 시내 다른 주요 대학 역시 논술 비중을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입시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논술 사교육 시장은 규모나 수익이 계속 커지는 반면 공교육 현장에 있어 논술은 답보 상태다. 2005년 9월 국회 교육위원회 조배숙 의원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공교육 현장에 있어 논술은 지도교사 부족·교육 부족 등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없는 사상누각 정책이라고 한다. 서울대 2008학년도 입시요강이 발표된 즉시, 사설 학원은 물 만난 오리처럼 수능 중심으로 짜인 학원 강의를 통합형 논술에 대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현직 교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현 공교육 체제에선 통합형 논술에 대한 준비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 교사는 “여건 개선과 교사 재교육 등 준비가 될 때까지 통합 교과형 논술의 전면 도입은 미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대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며, 이는 공교육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란 지적도 있다.

논술은 대학입시에 도입된 목적이나 그 자체의 절대적인 의미로만 살펴본다면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실제 ‘논술’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기제로 실현되며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생각한다면 그 의미는 조금 달라진다. 교육 사회학자 애플(M.Apple)은 “대학입시자율화의 결과로 보다 다양해진 대학입시제도하에서 다양한 문화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중·상류층의 자녀들이 보다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논술 교육이 공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지금, 사교육 논술을 수혜할 수 없는 계층의 학생은 대학입시에서 자연스레 소외된다.

또한 계급·계층 이외에도 지역에 따른 차별 역시 문제다. 12일자 세계일보 기사에 의하면, 서울에 비해 교육환경이 열악한 지방 소재의 고교는 논술교육에 대해 더 막막한 실정이라고 한다.

10년 전 세계화 바람이 불면서 영어 열풍이 일어났다. 늘어난 영어 수요에 대해 공교육보다 사교육 시장에서 먼저 반응했다. 이에 따라 영어 교육을 수혜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타났다. 특히 계층·지역 간의 격차는 뚜렷이 나타났다. 2005년 교육인적자원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 학생 중 35.3%가 해외연수를 다녀왔으며 이는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서울 지역 내에서도 강남구와 서초구 학생은 10.6%에 이른다.

소외 계층 아동에게도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올해부터 영어 공교육이 초등학교 1학년에게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이미 유치원 때부터 영어 교육을 받은 아이들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다양한 사고방식을 용인하는 논술은 대학입시에서 분명 환영받을 만하다. 그러나 교과과정에 제대로 된 논술준비 없이 대학입시가 시행된다면, 사교육 시장만 더 커지게 하는 지름길이다. 공교육 현장에서 논술 지도에 대한 확립이 없다면, ‘제 2의 영어 사교육 시장’만 또 탄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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