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주통은 왜?
[교수칼럼] 주통은 왜?
  • 이대학보
  • 승인 200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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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인 석 (과학철학 전공)


‘우리 학교에는 있지만 다른 학교에는 없는 것’을 꼽는 게임을 한다면 순번이 꽤 한참 돌아가도록 꼬리가 이어질 듯싶다. 지금 여기가 몇 층인지 종종 헷갈리게 하는 학관이나 학관 앞 비탈잔디 그리고 이화사랑 같은 장소의 이름도 등장할 법하고, 무용 채플이나 영산줄다리기 같은 이벤트의 이름도 튀어나올 것이다. 저마다 존경하는 우리 학교 교수님들의 이름도 메뉴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만일 내 차례가 온다면 나는 제일 먼저 ‘주제통합형교양’을 꼽겠다. 생뚱맞게 웬 ‘주통’?

몇 년 전부터 이웃의 연세대를 비롯해 가톨릭대·성균관대·서울대·부산대·숙명여대 등 여러 대학이 전에 없는 심혈을 기울여가며 추진 중인 일이 있다. 그것은 교양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일이다. 곧 더 많은 학교가 이런 추세에 합류할 것이다. 전문가를 양성하는 고등교육의 전당에서 교양의 강화라니! 대학이 교양이나 가르치라고 있는 곳이란 말인가? 하지만 만일 사회가 어떤 새로운 경향을 보인다면 우리는 일단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작정 따라가려고?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다.

필자가 보기엔 최근의 교양 강화라는 흐름 자체가 21세기적 상황에 대한 인식과 예견의 산물이다. 어떤 인식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가 크고 작은 수준에서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한 전문분야가 책임지고 처리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단 하나도 없다! 이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전문성을 갖춘 동시에 다른 전문성과 소통하면서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제가 요구하는 전문분야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네트워크 속에 함께 엮여 놀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교육을 받을 기회, 인간·사회·역사·예술을 능동적인 감수성으로 음미해볼 기회가 적었던 우리 학생들에게 자율적 지성인으로서 폭넓게 읽고 생각하며 토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대학 교양의 필수적인 역할이다. 하지만 21세기의 교양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21세기의 교양은 결과적으로 전문성을 더 유연하게, 그래서 더 눈부시게 발휘할 수 있는 인력의 양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화가 지난 2002년에 도입한 주제통합형교양 프로그램은 바로 이런 요구에 대한 부응의 시도다. 그것은 한편으로 전통적인 교양 교과목의 특성을 띠지만 동시에 유기적 상호 관계 속에 펼쳐져 있는 전문 영역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입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화의 ‘주통’은 교양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통해 깊고도 넓은 전문성의 세계로 진입해 들어가게 되는 다리다.

여러 영역에 걸친 여러 주제를 하나의 줄거리 속에 엮어나가는 사유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전문영역 간의 대화와 협력 그리고 경계선을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로 조금씩 이끌려가게 된다. 또 그런 과정에서 얻는 폭넓은 지식과 다른 전문분야에 대한 감각의 이득도 솔솔찮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학교가 인문·사회·자연·예술 각 영역마다 주제통합형교양을 한 교과목씩 이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학시절 나의 전체 커리큘럼은 어떻게 구성해야 옳은갗 하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세밀한 통찰과 경험이 모두 부족한 대부분의 학부생들을 중요한 지적 훈련의 마당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제통합형교양의 어려움은 몇몇 대학이 교양교육 강화의 방안으로 시도하고 있는 ‘글쓰기’ 프로그램에 비해 준비하기도 어렵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데 있다. 강의의 질을 관리하려다 보니 담당교수를 공급하는 일도 까다로워 많은 주통 강의의 규모가 커졌고, 그에 따른 문제점도 보인다. 하지만 최근 일부 대학이 도입하고 있는 글쓰기 교양 프로그램으로는 앞에서 말한 21세기 대학교양의 핵심적 기능을 충족시킬 수가 없다. 힘이 들더라도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현명한 자의 모습이다. 우리 학교가 그렇게 하고 있다.

필자가 여기서 한 이야기가 대학 당국 또는 교수들이나 마음 쓸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면 오늘 두뇌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셈이다. 여러분 중 절반 이상이 대학에 오기 전 꼬박 모았더라면 한밑천 되었을 학원비를 이미 투자했고, 지금은 꽤 비싼 등록금과 더불어 인생의 황금 같은 시기를 투자하고 있다. 주통 12학점의 의미를 알고 그것을 즐기면서 잘 활용한다면 그 투자를 성공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발판을 다지고 있는 셈이다. 이화인들의 위대한 성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