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인 좀…”

아직 무대에도 오르지 않은 작가를 학생들이 둘러싸고 있다. 소설 「새의 선물」·「그것은 꿈이었을까」를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팬 사인회다. 14일(목) 반도문학회의 주최로 진행된 ‘작가와의 만남’에 은희경 작가가 초대됐다.

그는 어릴적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좋아하는 글쓰기만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은 30대 후반에나 이뤄졌다. “일탈이 뭔지도 모르는 소심한 사람으로 살았어요. 졸업·취직·결혼·출산을 숙제처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이 인생인 줄 알았거든요”
그러다 열심히 하고 있는 숙제가 무슨 과목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위해 산으로 들어갔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낸 것이다. “잘 할 수 있고, 안 하면 후회할 일이 글 쓰는 것 밖에 없었어요” 그는 한 달 동안 무려 5편의 단편과 1편의 중편을 썼다. 이것을 모두 신춘문예 공모했고, 중편 ‘이중주’가 당선됐다. “당시 작가로서의 마음이나 자세는 없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그저 자유롭고 행복했죠”

주부·엄마로서의 삶을 묻는 질문에는 “여성 작가들은 모두 독하다”고 답했다. 집안일과 작품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성인이 된 자녀들은 더는 그에게 엄마의 역할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작품을 구상할 때면 집 밖으로 나온다. 잡념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초고 쓸 때는 여행을 떠나요. 그러면 저는 고민도 있고 인생도 좀 아는 여인이 되죠. 작가로서의 권위도 생기고요”그는 글을 쓸 때 만큼은 내 인생을 우선으로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그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한국소설, 독자가 너무 없어요. 뭐가 문제일까요?”여러가지 의견이 쏟아졌다. 한국소설은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평론의 눈을 거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는 문학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반면 대중을 따라서 문학까지 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여러 의견을 듣고 은 작가는 “문학은 훈련된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예술”이라며 “즐길 만한 사람이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세상과 인간에 대한 관점을 넓힐 수 있는 것이 문학이라며 문학만이 주는 즐거움을 강조했다.

프로 작가이지만 ‘은희경다움’에 대한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람들은 새로운 작품을 보면서도 첫 작품을 여과해서 평가한다”며 예전에 만든 이미지를 허물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저는 지금도 변화하고 있어요. 늘 깨어있는 생각으로 글을 쓰는데 굳어진 시각으로 평가하는 것은 좀 불만이죠”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는 그는 요즘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정확한 것만 추구했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있을 것 같다"며  정보가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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