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방학 · 쌍쌍파티 등 사진 100여장 전시

쨍쨍 내리쬐는 햇볕,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법대 언덕을 오르면 한옥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낮게 위치한 돌담을 따라 걸음을 옮기자 ‘이화역사관’이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이화 120년 자취를 한껏 품고 있어 알고 나면 가지 않고 배길 수 없는 이화역사관 속으로 들어가보자.

“1886년 처음 문을 열 당시 정동에 위치한 이화학당은 서울 시내에서 가장 빛이 잘 들어오는 곳이었어요” 오은영 이화역사관 연구원의 말이다. 이 때문일까. 당시 이화학당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했다는 역사관의 창문은 활짝 열려 있다.


이화역사관은 이화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역할 외에도 100장이 넘는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이 곳은 120년 이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 외에도 이화교지 창간호·이화를 세운 메리 F. 스크랜튼 여사의 편지·선교사들의 편지 등을 소장하고 있다.

1880년대 이화의 모습을 담은 ‘이화, 첫 이야기’전시장에 들어서자 댕기머리의 어린 소녀들이 무를 썰고 있는 사진이 눈길을 잡는다. 사진 제목은 ‘김장방학’. 손현지 연구원은 “이화에는 ‘김장방학’이 있었어요. 1930년대까지만 해도 11월이 되면 잠시 공부를 멈추고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갔죠. 가정대 학생은 무를 썰고, 문과대 학생은 배추를 절이고… 전교생이 투입되는 큰 행사였어요”라고설명한다. 현재 이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진풍경이다.

제2테마 ‘최초의 여의사, 여대생’관에서는 족두리를 쓴 한 처녀가 가마를 타고 시집가는 사진이 인상적이다. 사진 제목은 ‘시집가는 날이 졸업하는 날’이다. 오은영 연구원은 “공부를 하다 결혼이 늦어지는 학생은 선생님들이 나서서 좋은 남자를 찾아 결혼을 시켜줬어요. 혼수까지 마련해줬다고 하니 정말 ‘좋은 시대’였죠”라며 웃었다. 100년 가까이 지난 사진이지만 사진 속의 선배는 어쩐지 친근하다.


초기 이화학당에도 방학이 있었을까.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당시엔 방학이 없었다. “방학 때 학생들이 집에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요. 시집을 가거나 집안일을 도맡아 했기 때문이죠”오 연구원의 설명이다. 어려운 집안 살림에 입이 하나 더 늘었기 때문에 반기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학생들은 1년 내내 학교를 지켰고, 결국 방학은 없었던 셈이다. 이화 역사관에서는 사진 뿐만 아니라 역사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여성이 누군지 아세요?” 갑작스런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한 이화인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학위를 수여받는 사진 앞이다. 오 연구원은 “반헌경 박사예요. 김활란 박사는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반 박사는 이화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죠. 국내 최초에요”라고 답한다.
이 밖에도 이화역사관에서는 이야기가 가득 담긴 다양한 사진을 구경할 수 있다. 이 사진들을 통해 이화의 굵직한 변천사뿐 아니라 소소한 이화인의 일상도 볼 수 있다.
김수자 교수(사학 전공)는 “역사는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며 이화역사관이 그 열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16살의 소녀들이 옹기종기 공부하던 이화는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 21세기형 대학으로 변했다. 이화의 120년 역사가 궁금하다면, 공강시간 이화역사관에 들러보는 것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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