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가수 ‘아바’의 히트곡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 재작년 한국 초연 당시 26만 관객을 동원했던 ‘맘마미아’가 6월15일(목)∼9월10일(일) 앵콜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이 뮤지컬의 중심에는 박해미씨가 있다.
연희동 한 저택 앞, 얼마 전 종방한 드라마 ‘하늘이시여’에 출연했던 그가 촬영 중 시간을 냈다. 맘마미아 예매 첫날 5천장을 판매한 기록이 놀랍다는 축하 인사를 건네자 한마디로 되받아친다. “맘마미아가 성공한 건 바로 날 선택했기 때문이죠”그것은 쟁쟁한 뮤지컬 스타들을 제치고 주연을 거머쥔 자의 자신감이었다. 2년 전 ‘도나’역으로 급부상한 그는 앵콜 공연에서도 어김없이 도나를 꿰찼다. “올해도 오디션을 통해서 발탁된 거예요. 두 번째다 보니 도나의 섬세한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었죠”
맘마미아는 엄마(도나)와 단둘이 사는 딸(소피)이 엄마의 옛 애인들을 만나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다. 작은 모텔의 여주인인 도나는 남자에게 버림 받은 후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미혼모다. “도나는 울고 싶어도 울지 않는 캐릭터예요. 겉으로 보기엔 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속으로는 여린 여자죠. 그런 도나의 심정이 너무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가 도나에 깊이 빠질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다.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이나, 남자에게 상처받고도 씩씩하게 이겨낸 점, 다시 찾아온 사랑 앞에 두려워하는 모습까지도 닮았어요. 어디까지가 도나의 인생이고 저의 인생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죠. 오죽하면 사랑하는 사람 이름도 똑같이 ‘샘’이겠어요” 이처럼 그는 놀라우리만큼 배역과 닮아있었다. 맘마미아 공식 홈페이지의 ‘박해미의 열정적인 무대가 맘마미아를 살린다’는 등 줄을 잇는 극찬이 이를 증명한다.
박씨가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 음악대학 극회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어렸을 적 꿈인 프리마돈나(오페라 여가수)를 하려면 노래 외에도 연기·춤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극회에서는 세 가지를 동시에 배울 수 있었죠” 연극반에서도 그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뿜어내며 배우의 꿈을 다졌다. “당시 교수님께 천재적인 연기력을 가졌다는 평을 들었어요. 내가 뭘 잘 하는지를 알고 나니까 진정한 꿈을 찾을 수 있었죠”
대학교 1학년 때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주인공 마리아 역으로 데뷔한 지 올해로 22년째. 그러나 실제로 무대에 선 기간은 12년 남짓이다. 의처증 심한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생활 때문에 10년간 무대를 그리워해야만 했던 박해미씨. 데뷔 당시 ‘윤복희’와 함께 캐스팅될 정도로 인정받았던 그였지만, 이혼 후 다시 무대로 돌아온 그를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세월이 무섭더라고요. 난 벌써 40대 아줌마지, 인맥도 없지, 참 외로웠어요”
1993년 재기한 이후로 ‘돈키호테’·‘품바’ 등 수많은 작품을 거쳤지만 이름은 크게 알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맘마미아의 도나로 확정된 순간 무명 박해미는 주연 박해미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 그는 과거의 자신처럼 힘든 여성들을 위한 무대에 자주 오른다. 박씨는 ‘맘마미아’ 외에도 폐경기 여성들의 몸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다룬 ‘메노포즈’,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집시 여인의 이야기 ‘카르멘’ 등의 작품에서 주로 여성의 삶을 노래했다. “억압받는 여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요. 공연을 통해 ‘여성들이여, 자신의 삶을 찾자’라고 외치는 거죠”
인터뷰가 길어지자 박씨는 매니저와 손짓으로 사인을 주고받았다. 다음 스케줄이 있는 모양이다. “미안한데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이 번호로 연락 한번 줘요. 표 두 장 정도는 가능하니까”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휙 돌아 빠른 걸음으로 뛰어나갔다.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빛나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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