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싶은 거리’ 조성으로 한결 산뜻해졌으나 여전히 사람들과 상점들로 복잡한 본교 정문 앞 거리. 지난 반 세기동안 이화와 함께 한 ‘이대 앞’은 어떻게 변해 왔으며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까.
지금도 옷가게가 즐비한 이대 앞은 이미 오래 전부터 패션의 거리였다. 1935년 학교가 정동에서 신촌 캠퍼스로 이전하던 당시는 주변에 민가가 빼곡해 지금과는 현저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6·25 전쟁이 휴전된 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점차 젊은 여성을 위한 양장점과 미용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60년대 정문에서 이대입구역까지 이르는 길은 ‘몬아미 양장젼·‘다림 양장젼 등의 맞춤복 양품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띄엄띄엄 구둣가게도 있어, 이화인 뿐만 아니라 외부의 소위 ‘멋쟁이’들이 학교 앞에 북적거렸다. 정향진(불문·69년졸)씨는 “이대 앞이 명동 다음으로 옷을 잘 짓는 곳으로 소문이 나, 서점보다 옷가게가 많다고 사람들이 놀려대기도 했었다”고 회상했다.
70년대에도 큰길가에는 여전히 양장점과 구둣가게가 자리했다. 그러나 현재 이대역에서 정문 방향 진입로 왼편에 옷가게가 늘어선 골목은 이때만 해도 나지막한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주택가였다. 수업이 끝난 후 즐겨 찾았던 LP레코드 가게들과 ‘올리버’라는 클래식 음악 카페가 그립다는 최영순(관현악·79졸)씨는 “문화적인 정취가 풍부했던 예전에 비해 요즘은 학교 앞 거리에 낭만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80년대 들어서 이대 앞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럭키아파트 자리에 있었던 낡은 가옥 80여 채를 포함해 도로 양쪽의 민가가 모두 헐렸다. 또 신촌역 부근에 있던 대현 재래시장이 상가로 바뀌면서 여대생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보세 옷가게가 들어섰다.
또한 머리 미용의 붐이 일어남에 따라 크고 작은 미용실이 연달아 생겨났다. ‘은하미용실’의 오지영 원장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일뿐더러 ‘이대 앞에는 멋쟁이들이 온다’는 인식 때문에 연이어 미용실이 세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과 더불어 1984년 지하철 2호선 이대입구역이 개통되면서 이대 앞은 본격적인 상권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버스 노선도 증가해 접근성이 높아지자 이화인 외에도 10∼20대 외부 여성들의 유입 인구가 늘어났다. 좁은 인도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강냉이·오방떡·쥐포 로스구이·액세서리 등 각종 노점상들은 통행을 더욱 방해했다.
이렇게 시작된 상업화는 가속도가 붙어 90년대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90년대와 지금이 다른 점은 기업형 프렌차이즈(가맹점)가 대량으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대 앞의 터줏대감이었던 빵집 ‘그린하우스’는 ‘파리크라상’으로 바뀌었고, ‘코데즈컴바인’·‘퓨마’ 등 의류 관련 대기업의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대 앞’만의 특화된 상점보다는 번화가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점들이 학교 앞을 채우고 있다. 
올해 이후로 이대 앞은 또 한 번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밀리오레’가 이번주에 개장하며 이대역 앞 호원당부지의 ‘예스에이피엠(yes apM)’은 내년 8월 개장을 앞두고 있다. 잇따라 문을 여는 거대 쇼핑몰이 학교 앞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주목된다.

장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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