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아카데미쿠스와 호모 루덴스
호모 아카데미쿠스와 호모 루덴스
  • 이대학보
  • 승인 200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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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아카데미쿠스와 호모 루덴스  

조윤경 교수(프랑스시 전공)

새 학기가 시작됐다. 우리 마음은 두 가지 상반된 욕구로 갈등한다. 하나는 새로운 강의를 열심히 들으며 해야 할 일들을 의욕적으로 수행하고 싶은 욕구다. 다른 하나는 학원과 아르바이트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는 억울함, 일정이 너무 짧았다는 아쉬움 때문에 딱 한 달만 방학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놀고 싶다는 욕구다.
이 두 욕구를 어떻게 잘 다독거려 이 맘 때쯤 우리에게 찾아오는 새 학기 증후군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놀면서 공부하고, 즐기면서 일하면 된다.
‘그런 방법이 어딨어’하며 소리 지르기 전에 호이징가(Huizinga)와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 두 학자들을 떠올려 보자. 「호모 루덴스 Homo ludense」의 저자 호이징가는 학문·시·예술의 유희정신에 의해?삶이 얼마나 풍부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놀이는 성스러운 행위다. 예건대 축구의 다양한 기원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Maori)족의 공놀이에서 내기에 걸려있는 공이 태양을 상징하는 것처럼, 많은 놀이들에는 성스러운 기원이 있다.
로제 카이와는 「놀이와 인간 Les jeux et les hommes」에서 놀이를 문화 창조의 핵심적인 힘으로 보고 있다. 경쟁·우연·모의(模擬)·아찔함이라는 놀이의 요소들이 결합하고 변화함에 따라 문화는 새롭게 창조된다.?
놀이는 무엇보다 진지함을 수반한다. 황홀함과 신중함·열광적인 흥분과 세심한 정확성·풍부한 감정과 규제·놀이에는 서로 반대되는 덕목들이 동시에 집중된다. 어디에 몰두한다는 것의 아름다움, 이것은 학문하는 인간, 호모 아카데미쿠스(Homo academicus)와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e)가 공유하는 미덕이다.?
‘호모 루덴스’는 21세기 정보시대에 특히 중시되는 인간형이다. 농업시대에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 생각하는 인간형이 중심에 있었고, 산업시대에는 호모 파베르(Homo fabre) 만들어내는 인간형이 중시됐다. 그러나 21세기 정보시대에는 통합적인 감각과 고감도의 감수성을 지닌 촉각적이고 창조적인 인간형, 호모 루덴스가 각광을 받는다.
나아가 하는 ‘Playwork’의 원리가 학교와 직장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다. 관리체제에서 참여체제로 일의 형태가 바뀌면서 일/놀이·학습/유희의 경계가 붕괴됐기 때문이다. 일과 노동의 분리에서 일과 노동의 병합으로 문명의 흐름이 바뀌어 감에 따라 개미와 베짱이가 더 이상 대립하지 않는 ‘개짱이’의 시대가 온 것이다.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라는 요즘 자주 들을 수 있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교육과 놀이문화도 결합된다. 컴퓨터는 멀티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놀이와 학습을 함께 하게 한다. 테마파크, 다양한 역사 체험장, 과학의 원리를 놀이기구를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과학 체험관 등은 놀이와 교육을 결합한다. 대학 강의실이 놀이장소일 수는 없다. 하지만 즐기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강의에 참여하면 강의하는 이와 강의 듣는 이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두가 지적인 놀이에 참여하는 동반자가 된다.
‘Playwork’의 원리는 예로부터 “지지자(知之者)는 불여호지자(不如好之者)요 호지자(好之者)는 불여락지자(不如樂之者)라”라는 말로 공자가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은 즐김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제 ‘놀 땐 놀고 할 땐 하라’라는 말이나, ‘수학 시간에 국어 공부하고 놀 때 공부 생각하고, 공부할 때 놀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공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통용되지 않는 시대이다. 수학을 국어와 연결할 수 있는 사람, 놀면서 공부와 사유의 끈을 연결시키고, 공부하면서 즐길 줄 아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다.
지식이 ‘검색’되는 시대에 더 이상 지식들을 암기하거나 나열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됐다. 떠돌아다니는 지식들을 깊이 있게 사유하고 통합적인 큰 틀 안에서 연계해 바라보면서 나의 것으로 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접하는 매일의 일상과 문화에서 학문의 단초를 찾자. 그리고 강의실에서, 책상 앞에서 학문의 유희를 즐기자.
하늘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사색과 성찰의 이 계절에, 문화의 모든 풍요로움과 책의 깊은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축제와 공부의 황홀한 체험은 함께 지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