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데미안」을 읽고

깜짝 수수께끼. 책의 제목을 맞춰보시오. 이 책의 제목은 데몬(Damon)과 같은 뜻으로 ‘악마에 홀린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부제는 ‘에밀 싱클레어의 청년시절 이야기’이다. 도움말 하나 더, 지은이는 헤르만 헤세이다. 정답은 무엇일까?
답은 ‘데미안’이다. 데미안의 내용 중 두 가지 주제에 대해 말해보겠다. 첫 번째, 싱클레어와 에바 부인의 관계에 대해서다. 에바 부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아브락사스(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가지고 있는 신성)의 실존이고 세계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성이 가지는 포용력·관대함·부드러움을 통해 밝음의 세계뿐 아니라 어둠의 세계를 함께 안아, 자신 안에서 온전한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는(혹은 완성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바로 에바 부인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아브락사스를 어느 정도 닮아 보였다. 아브락사스의 세계를 갖고자 하는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에게서 느끼는 안정감은 여기에 연유한 것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로 싱클레어가 미친 듯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봤다. 싱클레어는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베아트리체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실은 자신의 무의식과 깊은 내면세계에 자리 잡은 이미지를 구현하려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림은 표현의 매개체였을 뿐이다. 또 미친 듯이 새를 그려서 데미안에게 보낸다. 이 그림을 본 데미안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Abraxas.’라는 구절을 써 싱클레어에게 쪽지를 보낸다. (여담이지만, 데미안은 무슨 수로 그 쪽지를 보냈을까? 무려 수업중인 싱클레어에게!) 싱클레어는 지칠 때까지 베아트리체, 혹은 어떤 이미지를 그려낸다. 이 그림들은 데미안을 닮았고, 또 에바 부인을 닮았다. 아마도 싱클레어·데미안·에바 부인은 서로 닮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데미안이 말처럼 ‘표식’을 가진 사람들의 눈빛, 생각하는 입매 등 같은 이상을 품은 이들은 같은 느낌을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데미안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새롭게 변한 자신의 느낌 때문에 깜짝 놀라게 되는 책이다. 며칠 전 86학번 반도문학회 선배님을 만났다. 데미안 얘기를 꺼냈더니, “마흔이 되어 읽는 데미안은 또 다르더라”라고 말해주셨다. 나이 스물에 읽는 데미안과 마흔에 읽는 것은 얼마나 다르고 놀라울까. 마흔살 때는 스물에 느꼈던 감수성에 대해 어떤 기분이 들까. 중학생 시절 내가 처음 데미안을 읽었던 때는 ‘아브락사스’라는 존재에만 집중이 됐다. 최근에 다시 읽자 ‘에바 부인·데미안·싱클레어’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씩 넓어져 마침내 세계를 품으려고 하는, 그렇게 되기 위해 세계를 깨뜨리는 그들처럼, 나도 조금은 나의 부리로 나의 세계를 깨뜨려보고 싶다.

권은지 반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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