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아버지에게서 생명을 얻었고 아버지는 딸에게서 새 생명을 얻었다.
간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를 위해 간이식 수술을 한 최아름(성악·3)씨가 18일(수) ‘선행청소년상’을 받았다. “당연한 일을 한 건데 상까지 받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라며 웃는 ‘현대판 심청이’를 아름뜰에서 만났다.
그는 간경화를 앓고 있던 아버지의 간에서 올해 4월 암세포가 발견됐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장기를 이식 받아야만 회복이 가능하다고 했다. 두 명의 동생이 있지만 가족 중 장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와 혈액형이 같은 아름씨가 유일했다.
그는 언젠가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할 프리마돈나를 꿈꾸는 예비 성악가다. 수술을 하면 복근에 무리가 올 것을 알았지만 결정하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백혈병으로 1년 반 정도 투병하시다가 작년 4월에 돌아가셨거든요. 아버지까지 잘못되면 어쩌나 무서웠어요. 그래서 쉽게 마음을 먹을 수 있었죠.” 결국 지난 6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간의 60%를 잘라냈다. 장장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3일간 중환자실에 있다가 일반 병실로 옮겼다. 그의 간을 곧바로 이식 받은 아버지는 이식환자들을 위한 무균병동에 따로 옮겨졌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후 병실 전화를 통해 아버지에게 들은 첫 말은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것. “내가 이제 더 열심히 살겠다고, 계속해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그러시더라구요. 뭐라고 대답했냐구요? 아이, 뭘 또∼ 나중에 옷이나 한 벌! 그랬죠, 뭐.”
힘든 수술이었을텐데도 지난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얼굴엔 그늘이 없다. 수술 후 살이 10kg 이상 빠졌던 아버지가 요즘엔 인적 드문 공원에 산책을 나갈 정도로 좋아지셨기 때문이다. 아름씨의 몸도 거의 회복됐다. “이번 학기에는 스쿼시 수업도 듣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제가 워낙 튼튼했어야 말이죠”라며 스시롤 하나를 집어 한입 가득 베어 문다.
아름씨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은 지금 대구에 산다. 비록 떨어져 있지만, 그의 아버지 최부용(50)씨는 이렇게 씩씩한 큰딸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맙다. 평소에도 활달하고 성격 좋은 딸을 ‘나 닮았다’며 매일 자랑하고 다니던 그였다. “처음에 자기 간을 떼어준다고 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결혼도 안한 애가 배에 상처도 날 테고, 더군다나 성악도 하는데…. 수술이 결정되고 나서도 애가 걱정하고 있으면 더 마음 아팠을텐데, 평소와 똑같아서 그나마 안도를 했지요.”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최부용씨의 음성은 담담하고 겸손했다. 딸 덕분에 새로 태어난 최씨는, 이제 그 고마움을 다른 환자들에게 봉사하며 보답해 나갈 생각이다.
회복 기간 중에도 힘에 부쳐 노래를 못하는 게 참 힘들었다는 아름씨. 그는 다음달 열리는 성악학부 음악회 오디션에 뽑혀 11월16일(목) 솔로로 무대에 오른다. 교수 추천으로 광명시립오페라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습 때문에 하루하루 쉴 틈 없이 바쁘다며 “으헝, 너무 힘들어요” 하고 울상 짓지만 그 속에선 기쁨이 묻어나온다.   
모금활동으로 3백여만원을 모아준 음대 사람들, 신경 써주신 김상곤(성악 전공) 담당교수님, 병간호 해준 룸메이트. 모두가 고맙지만 역시 가장 힘이 되는 건 친구같은 여동생과 어린 남동생, 그리고 아버지다.
전화로는 “가시나, 밥 먹었어?”라며 무뚝뚝하게 말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가끔 보내는 문자는 큰 원동력이 된다. ‘오늘 하루도 너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제 생각에 아빠가 저 시집 못 보낼 것 같아요. 엄청 우실 것 같아요. 저보다 더 우실 것 같아요.” 나눠가진 장기만큼 부녀간의 사랑도 더 깊어진 모양이다. 

장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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