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끝없이 발달하고 자본주의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 전쟁·인간소외 등 문명이 불러온 폐해를 볼 때, 우리는 때로는 자연과 원시로의 회귀를 꿈꾼다.
문명에 찌들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삶에 간접적으로나마 닿아볼 수 있는 미술전이 열렸다. 호주 케이프 요크 반도 북동쪽 끝 록하트 리버(Lockhart River)에는 원주민들이 모여 산다. ‘날 것’의 자연이 아직 살아 있는 이곳, 록하트 리버에 사는 원주민들의 미술작품을 살펴보는 ‘호주 원주민 미술전’이 23일(월)~28일(토) 이화아트센터에서 진행됐다.
본교와 호주대사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회는 호주 원주민 특유의 장식적인 미술과 토속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이뤄졌다. 이들이 다룬 소재는 거의 다 자연에서 찾은 것들이다. 캔버스 위에 등장하는 캥거루·학·게 등의 동물들은 무척이나 순진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원주민들이 동물을 볼 때의 심정이 고스란히 그림에 담긴 듯하다. 그 외에도 그림 속 바다와 숲은, 광활하게 펼쳐진 록하트의 초원과 해변을 상상하게끔 만든다.
때묻지 않은 자연이란 이토록 강렬한 것일까.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눈을 사로잡는 것은 강렬한 자연주의적 색채들이다. 르로이 플랫(Leoroy Platt)의 작품에서 오도카니 서있는 캥거루 뒤로 깔리는 석양은 눈부시게 선명한 주황색이다. 나무 한 그루, 날아가는 작은 새 한 마리에도 또렷한 색감이 살아난다.
벽에 걸린 그림들을 돌아보다보면 어린아이가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진하게 칠해놓은 그림이 떠오른다. 그만큼 원주민들의 회화는 아이같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천진난만하며 때로는 장난끼가 넘친다. 아드리안 킹(Adrian king)의 작품에서는 특히 가족적인 분위기가 따뜻하게 스며나온다. 시냇가 근처 움막 앞에 있는 한 무리 사람들이 행복한 듯 웃고 있다. 아무렇게나 그려진 눈코입에서 정감이 넘친다. 혈연을 바탕으로 한 록하트 원주민들의 유대가 얼마나 끈끈한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전시를 주관한 우순옥 교수(회화판화 전공)는 “가족, 자연 등 바삐 살다보면 잊어버릴 수 있는 소박한 소중함을 그들의 그림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몇몇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현대미술 작가들을 능가할 만한 과감함이 돋보인다. 피오나 오민요(Fiona Omeenyo)의 모든 작품들에는 거꾸로 뒤집힌 인물 형상들이 한 가지 색깔의 실로 묶인 모습들이 묘사돼 있다. 그중에서도 ‘아직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Still with Us)’라는 작품의 다채로운 색상은 한참이나 그림 앞에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짙은 빨강·노랑·연두 등 오묘하게 섞인 색들이 휘몰아치며 생명력을 내뿜는다.
실라스 홉슨(Silas Hobson)같은 경우 캔버스 위에 물감을 흩뿌리는 드리핑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캔버스 전면을 활용한 그 자유로운 표현법은 유명한 현대화가 잭슨 폴록을 생각나게도 한다. 외부와 교류가 거의 없는 원주민들의 회화가 서구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은 상당히 놀랍고 독특하다.
전시를 관람한 김보경(시디·3)씨는 “작품들이 형식과 틀에 얽매여 있지 않고 원시성을 드러내 특이하면서도 재미있다”며 소감을 전했다. 전시장을 나와 그림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질지라도, 호주 원주민들의 따뜻함과 순박함만은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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