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분명히 전생에 협객이었을 거예요!”라며 눈을 반짝이는 최지은(국제사무·3)씨. 하얀 얼굴과 단정하게 묶은 까만 머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로맨스 소설만 읽을 것 같이 여려 보이는 최씨가 열광하는 장르는 바로 칼싸움이 난무하는 무협지다.

그를 비장한 무림강호의 세계로 이끈 사람은 중학교 1학년 때 짝이다. “무협지를 좋아했던 그 친구가 ‘김용’이라는 중국 작가의 무협 만화책 ‘천룡팔부’를 잔뜩 빌려왔었죠. 처음엔 화려한 그림이 좋아서 봤는데 읽다보니까 재밌더라고요” 명나라를 배경으로 천신과 인간이 싸운다는 소설 줄거리에 더 큰 흥미를 느낀 그는 만화책의 원작인 소설을 찾아 읽었다.

무협의 세계에 폭 빠진 최씨는 그 후 매일같이 책방에 들르기 시작했다. “한 번 가면 무협 만화책 20권과 두꺼운 무협 소설책 2∼3권은 기본으로 빌렸어요” 영어책을 사기 위해 대형서점을 찾았다가도 무협지를 사기 일쑤였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한두 권씩 모은 무협 작품들은 어느새 만화책 50권·비디오 30편으로 불어났다.

첫 단추를 ‘김용’으로 꿰어서일까. 그는 김용이 지은 무협지 외에는 손도 안 대는 편식가다. “처음 접한 무협지가 김용 작품인데 어떻게 다른 소설을 볼 수 있겠어요” 김용의 작품은 무협 소설계의 ‘고전’으로 불린다.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의천도룡기’·‘신조협려’·‘사조영웅전’ 등은 모두 김용의 작품이다.

“김용 소설의 매력은 깊이가 있다는 거죠. 대부분의 소설들이 다루는 우정·사랑 같은 주제보다는, 정의·도리와 같이 보다 진지하고 원론적인 주제에 대해 접근해요.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고나 할까요”

무협지를 읽으며 얻은 지식도 많다. 소설의 배경이 된 명나라·송나라 등 중국 역사에 대해서는 줄줄 꿸 정도다. “무협지는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포장한 허구라고 할 수 있죠. 역사서는 송나라와 한족의 싸움을 정파 입장에서 그리고 있잖아요. 무협 소설은 그것을 사파의 입장에서 새로 구성하니까 더 풍부한 역사 지식을 갖게 돼요”

취미삼아 읽어온 무협지가 학점에 도움이 된 적도 있다. 최씨는 2005년 1학기 ‘인터넷 활용 및 홈페이지’라는 수업에서 무협지를 주제로 한 홈페이지 ‘소호강호(웃으며 강호를 노닐다)’를 만들어 좋은 성적을 거뒀다. 무협세상·강호입문·영웅대회 등 6개 메뉴로 꾸며진 홈페이지는 무협지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그의 관심사를 한눈에 드러내 준다. “약간은 생소한 무협지라는 소재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것이 눈길을 끌었던 것 같아요”

지난해 2학기 ‘호신의 이론과 실제’ 수업을 들었던 것 역시 무협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정식 무술 대신 대리만족으로나마 호신술을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온라인에서도 무협지에 대한 애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는 포털사이트 ‘다음(www.daum.net)’ 무협카페 중 최대 규모인  ‘곽정과 양과’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특히 토론 게시판의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장면’에 올라온 글들을 보는 것이 가장 즐겁다.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는 카페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등 좀 더 적극적인 동호회 활동을 할 계획이다. “제가 그랬듯이, 다른 사람도 제 글을 읽고 공감할 수 있길 바래요.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작가의 무협 작품들을 폭넓게 읽어야만 하겠죠” ‘가려 먹는’ 특정 무협지 마니아에서 ‘뭐든지 잘 먹는’ 진정한 무협지 마ㄴ니아로서의 그의 변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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