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실있는 '이화브랜드'만이 사회편견 극복의 열쇠...작은 것 하나에도 애정 쏟는 학교가 되길

강산이 12번 제 모습을 단장하는 동안, 이화는 1명의 학생으로 시작해 2006년 13만1천7백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여성교육의 메카로 성장했다. 유구한 역사를 저변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이화.

24일(수) 끈끈한 애정과 치열한 학습 분위기 속에서 특별한 경력으로 이화를 빛낸 졸업생 손지영(정외·06년졸)씨와 재학생 권오현(경제·4)씨·윤민숙(법학·4)·이윤진(화학·3)를 만나 이화의 얘기를 들어봤다. 

 ◇ 그들은 특별하다

정외과를 졸업한 손지영씨는 2005년 ‘ICT(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가 국제개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해 제 1회 대학(원)생 세계지역연구 우수논문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평소 국제관계나 통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경제학·불문학을 비롯해 8개의 전공을 부·복수로 이수하며 4년 내내 전공과목으로 시간표를 채웠다고 한다. 96년 부·복수 전공을 장려하기 위해 전공 이수 학점을 하향 조절했던 당시 학교의 방침을 가장 잘 수행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3학년 때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통과해 기분 좋게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는 권오현씨. 그는 중문과 학생이었지만 회계학 수업을 듣던 중 ‘진정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이쪽 분야’란 생각이 들었단다. 중문과 수업과 병행하며 CPA를 준비하는데 한계를 느낀 그는 전과를 고민했지만 그의 학점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 본교의 전과 제도는 열려있었다. 경제학과 교수님에게 전입해야만 하는 자신의 뜻을 간곡히 설명했고 이화의 배려로 3학년때 CPA의 장벽을 넘을 수 있었다.

사법연수원에 다니고 있는 윤민숙씨는 재학 중에 사법고시(사시)에 합격했다. 흔히들 4학년 때 도전하는 사시는 ‘그냥 경험삼아 한 번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이왕 치루는 것 제대로 집중해서 하자’고 다짐했단다. 의욕 없는 도전 대신 확실한 동기부여를 통해 열정으로 사시에 뛰어든 것이다.

‘21세기 장학생’의 영광을 안고 입학한 주인공 이윤진씨는 다른 학생들보다 한발 앞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원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21살의 어린나이로 실험실 생활에 들어간 것이다. 혼신을 다해 1년을 꼬박 연구에 투자한 결과 그는 학생의 신분으로 저명한 국제 학술지 ‘독일화학회지’에 제 1저자로 논문을 발표했다. 지도교수의 끊임없는 관심과 이화의 지속적인 혜택에 보답하는 순간이었다. “수업시간에만 겨우 교수님을 대면하는 학생들이 안타까워요. 지도교수와 충분히 소통하면 고민은 물론 미래설계까지 수월해지는데 말이죠” 이윤진씨는 남원우 지도교수(화학 전공)와의 인연을 이화가 배푼 가장 고마운 특혜로 꼽았다.

◇ 대학생활, 2% 부족했다

작게는 자신의 만족과 성취, 크게는 이화를 빛내기 위해 매진한 그들이 과감히 포기했던 것은 무엇일까. 시험에 합격하고 4학년이 돼서야 동아리 활동이 몹시 부러워졌다는 권오현씨. “지금이라도 끼워주기만 한다면 어울려서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라며 웃는다. 윤민숙씨도 공부에 대한 부담으로 1·2학년 시절을 어정쩡하게 보냈다며 아쉬워했다. 단순히 놀지 못한 아쉬움이 아니라 삶의 원동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아쉬움이다. 추억할 거리가 별로 없다는 것은 심심한 인생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윤진씨의 기회비용은 2년 내내 책과 씨름하느라 소홀히 했던 체력이다. 아침9시부터 밤10시까지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곪아있던 피로가 터져 나왔을 때는 정말 아찔했다고.

◇ 이화를 말하다

“가까운 친구사이라도 서로를 존중하죠. 막 대한적도 없고 막 대접받은 적도 없어요 ” 이화인들의 대인관계에는 허물없는 사이라도 침범하지 않는 적정선이 있다는 게 그들의 의견이다. 자칫 불편해 보일 수도 있으나 이는 오히려 자유로운 관계에 책임을 부여하고 끈끈한 정을 오래도록 유지시킨다. 사제간도 마찬가지다. 이화의 교수는 학생들의 우위에 있다는 권위의식이 아닌 학문의 선배라는 위치에서 학생들을 이끈다. 이화인은 누구와의 어떤 소통에서도 존중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가까운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이 폭넓은 관계로 연결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만 해도 그래요. 타과생들과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일찍이 있었다면 졸업하기 전에 다양한 사람들을 알고지낼 수 있었을 텐데…” 졸업생 손지영씨는 학부시절 이런 자리가 많이 없었던 점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강제적으라도 선후배가 만나 진솔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는 꼭 필요하다고. 이에 권오현씨는 선후배간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멘토링 제도를 제안했다. 학부시절 ‘할 수 밖에 없는 고민’·‘안해도 되는 고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선배들의 조언은 소모적인 고민을 현실적인 미래 설계로 이어지게 한다. “물론 1회성이 아니어야겠죠. 지속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마련됐으면 해요” 윤민숙씨도 선후배는 물론 같은 학번 친구 얼굴도 다 알고 지낼 수 없는 학교 시스템을 지적했다. 타대와 달리 반제가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수업 한 두개를 같이 듣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연수원은 처음 한 두달 정도 매일같이 체육대회를 해요. 무조건 친해지고 보라는 연수원 측의 방침이죠. 덕분에 몸은 힘들지만 남녀 할 것 없이 사이가 돈독해졌어요” 윤민숙씨는 술자리보다 더 쉽고 더 빨리 친목을 쌓는 길은 다름 아닌 운동이라며 “절대 남자들의 영역이 아니니 체육대회를 통해서라도 타과생들과 교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생활주기를 안타까워하던 손지영씨는 “사회생활을 해보니 이대출신이 자생력 하나는 최고더라”고 말해 웃음바다를 만들기도 했다. 혼자 밥먹기·혼자 벤치에 앉아 쉬기·혼자 공부하기 등에서 기른 이화인들의 독립성은 상사의 구박과 사회로부터의 제약을 거뜬히 이겨내는 수준이라고.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이화의 개인주의 분위기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엔 문제점이 많다는데 다들 공감했다. 친화력이 부족하다는 사회의 편견에 한 몫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다른 역사와 전통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학교와 이화인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화 브랜드’ 승부수는 내실있는 경쟁력

 “입사를 하고나서 이화여대라는 브랜드 가치에 의문이 들었어요. 우리는 강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지만 이화여대에 대한 사회 인식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더라고요” 손지영씨는 인성이나 능력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취업이 잘 되지않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이화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윤진씨도 이화여대를 지원한다고 했을 때 이런 편견 때문에 주변의 반대가 있었다며 고질적인 문제로 방치할 수만은 없다고 동조했다.

권오현씨와 윤민숙씨는 학교 측의 ‘보여주기식 홍보’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첫 여성국무총리 탄생, 세계 최초 OO물질 개발 등 보편적인 학생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지나치게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정작 중간과정에서 노력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빠져있어 상위 몇%를 위한 학교로 비춰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겉만 번지르르 한 것이 아니라 정말 내실 있는 이화여대라고 평가됐으면 해요” 손씨는 능력 있는 인재들이 많이 배출돼 이화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모두 극복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사회에서 이화를 바라보는 시선도 중요하지만 정작 학생들이 몸소 느끼는 이화의 이미지도 중요하다. 이씨는 이화에 막 발을 담그기 시작한 새내기들에게 학교가 따뜻한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도록 보살핌과 인내심이 많은 학교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작은 것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이화의 애정, 이화인 모두가 기대하는 작은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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