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총리 인터뷰

120년 역사 동안 무수히 많은 여성 ‘최초’라 불리는 인재들을 배출해 온 이화. 그간의 저력으로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의 빗장을 드디어 풀었다. 또다시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이화인이 쓰게 된 것이다.
25일(목),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국무총리실에서 헌정 사상 첫 여성총리이자 이화 동문인 한명숙 국무총리를 만났다.


-헌정 사상 첫 여성총리가 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소감 한 말씀 해주신다면
이는 분명 새로운 정치발전에 한 지평을 여는 일이다. 21세기는 여성이 남성과 더불어 국가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시기이며, 첫 여성 총리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특유의 모성적 관점으로 다가가 민생을 보살피는데 도움을 줄 것이며, 남성중심적인 수직적 리더십이 아니라 자발성을 유도하는 수평적 여성리더십이 화합과 타협의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데 적합하다고 본다.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민생을 보살피는 것이 총리로서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하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국민에게 직접 다가서고 낮은 자세로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민에게 겸손하고 역사 앞에서 겸허하게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올해는 이화가 설립된 지 120주년을 맞는 해인데, 축하 인사를 부탁드린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여성지도자 육성에 앞장서온 모교 이화여대가 창립 120주년을 맞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이화여대는 여성들이 건전한 인격과 교양, 전문지식을 갖추도록 교육함과 동시에 사회봉사와 학문연구로 국가 발전에 기여해왔다. 또 지난 세월동안 여성의 사회활동을 개척하면서 한국 여성사를 이끄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앞으로도 이화여대가 개척자 정신을 통해 21세기가 요구하는 여성인재들을 많이 배출하는 요람이 되길 바란다. 이번 120주년을 재도약의 계기로 삼고 국가와 인류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었으면 한다. 다시 한번 이화여대 창립 120주년을 축하드리며 이화인 모두가 더욱 발전해 나가기를 기원한다.


-학창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
중?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시와 소설 등에 심취했던 문학 소녀였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해 수업 시간에 책상 밑에 숨겨놓고 읽다 들킨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세상물정 모르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내가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에 했던 서클 활동이었다. 남편과 만남이 시작된 곳이기도 한 기독교학생연합단체 「경제복지회」에서 활동하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화에서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
얼마 전 이화 캠퍼스를 찾은 적이 있는데, 내가 다니던 시절과 참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캠퍼스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많아 좋았다. 특히 현재 도서관과 법대가 있는 곳이 모두 산이었는데 친구들과 뒷산에 올라 꿈, 진로, 사회문제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또 당시에는 창립기념일 메이데이에 메이퀸 선발과 쌍쌍파티 등의 행사가 있어서 남자친구와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그때가 지금의 남편과의 공식적인 첫 데이트였다. 돌이켜보면 당시 대학생들은 소박하고 수수한 만남을 가졌던 것 같다. 우리도 아무 버스나 골라 타고 종점에 내려 들판과 산에서 데이트를 즐겼었는데, 요즘 대학생들은 어떻게 연애를 하는지 궁금하다.
학부 재학시절에 했던 불어 연극도 잊지 못할 기억이다. 교양과목으로는 이태영 교수님의 ‘법과 여성’이 사회문제에 눈을 뜨는 데 큰 영향을 줬다. 김옥길 전 총장님 역시 소중한 은사 중 한 분이다.


-어떤 계기로 정계에 입문하게 됐나
1970년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탄생한 진보적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각종 제도와 법에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여성정책에 대해서는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남성과 더불어 여성이 우리 사회 발전의 한 축으로서 당당히 참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성부 장관으로 일할 때 모든 정부 정책에서 양성 평등이 이뤄질 수 있는 ‘성 주류화(gender-mainstreaming)’를 여성정책 전략으로 추진했다. 이 외에도 여성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일한 경력들이 정계 입문의 기반이 된 것 같다. 앞으로도 여성인력 활용을 위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 이화가 현재의 자리에 오르는 데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사회에 관심을 많이 갖는 사람들은 남녀공학에 많이 진학했다. 헌데 졸업을 하고 보니 이화대학이야말로 여성 리더십을 육성하는 최고의 대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공학에서는 남학생들에 비해 여학생의 리더십이 제대로 키워지지 못하는데 비해 여자학교에서는 누구든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고, 특별히 이화여대는 여성 리더십에 강점을 두고 교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학풍이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 리더들을 배출할 수 있었던 힘이라고 생각한다.


- 이화의 후배들에게 한 마디 남겨주신다면
나는 여성들에게 자주 ‘자유로운 파랑새가 되라’고 말하곤 한다. 21세기는 여성이 기존의 굴레를 벗고 자유롭게 재능을 발휘하며, 여성과 남성이 함께 중심에 서는 시대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만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남녀가 함께 쓰러지면 남자는 무언가를 주워서 일어나지만 여성은 그냥 쓰러진 채로 좌절한다는 말이 있다. 이제는 쓰러져도 당당히 일어서고, 실패가 앞으로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용기와 결단을 갖춘 여성이 되길 바란다.
다가올 미래는 지금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현재 맡은 바에 충실히 최선을 다하면서 꿈과 이상을 크게 갖고 도전하는 여성이 돼야한다. 도전하는 여성은 아름답다고 했다.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아름다운 이화인이 되길 바란다. 뿐만 아니라 더 낮은 자세로 봉사하고, 주변 사람들을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한명숙 국무총리는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정신여고와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70년대 여성운동에 앞장서다 구속되기도 했다. 1990년부터 4년간 한국여성민우회 회장을 역임했고, 감사원 부정방지 대책위원회 위원을 비롯 각종 정부기관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0년에는 제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2001년에는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냈다. 여성부 장관 재임 시절 가족법·남녀고용평등법·성폭력처벌법 등 여성 권익에 관련된 법률 제정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어 2003년에는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올해 4월20일부로 제 37대 국무총리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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