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즐겁게 세상을 흔들어라’
학교 곳곳에 이화 120주년을 축하하는 엠블럼와 슬로건이 눈에 띈다. ‘Frontier Ewha’는 120년전 세워진 이화의 정신이며, 엠블럼은 세계 및 글로벌 사회에서의 참여와 나눔을 의미한다. 이국만리 떨어진 미국에서 개척자 정신으로, 적극적 참여와 나눔으로, 즐겁게 세상을 흔드는 한 여성이 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 행정 고위 관료직에 오른 미 연방 노동부 여성차관보 전신애(영문·65년졸)씨. 본사는 이화 창립 120주년 기념으로 2월1일(수) 워싱턴 노동부 청사에서 그를 만났다.

◆“학구적 열의와 남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

- 동양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최고위 행정부 관료가 되셨는데 그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저희 아버지는 전문학교까지 졸업하신 분으로 끊임없이 독서를 하셨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분이셨습니다. 또 어머님은 .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나 부엌에서 일하는 언니들까지 모두 자기 자식처럼 대하실 정도로 정이 깊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아버님의 ‘학구적인 열정’과 어머님의 ‘남과 나누는 마음’이 제가 성공한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평소 소수민족이나 여성에게 있어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저희 세대 중 한국에서 명문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도 이곳에서 교육를 계속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에 따라 차후 미국 사회 진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육을 받은 사람은 미국 사회에서 전문직에 오른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사회 진출에 장애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21C는 우리 때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을 원할 것이고. 앞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 예상합니다.

◆ “Soft Skill이 중요”

- 선배님은 한인 1세인데, 언어적 장벽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영어 공부를 하면서 이민 1세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영어가 서툰 이민자들과 일을 할 때는 영어가 크게 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89년 일리노이 주정부 금융규제부 장관직에 오른 후 그곳에서 일하는 대다수 백인들의 표현을 귀담아 듣고, 잘 외워뒀다가 적절한 때에 사용하다보니 제 영어 실력은 크게 늘었습니다. 워싱턴에 오니 제 영어 실력은 한층 더 좋아졌습니다. 영어를 배우는데 있어 그만큼 자기 주변 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미국에 와서 한국계 모임에만 나가고 한국 사람들과만 어울린다면 영어가 크게 늘지 않습니다.

- 미국 주류 사회 진출에 있어 미국만의 문화와 관습을 아는 것이 중요한데,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관습과 문화가 바뀐다고 행동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반드시 배워야 할 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입니다. 제가 자랄 때는 “이야기 하지 말아라”, “조용히 해라”, “어른들 앞에서는 얌전히 있어라”란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좋지 못한 교육 방식입니다. 자기 의사와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높은 학위를 지녔더라도 말하는 능력이 없다면 남에게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자랑보다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보통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팀 작업이 있습니다. 우리는 경쟁을 지나치게 의식해 1등을 하느냐, 2등을 하느냐에 너무 얽매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혼자만 뛰어나다고 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승리하는 win­win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 이 중에서도 동양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이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요

: 미국에서 ‘Soft Skill’이라 불리우는 게 있는데, 이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면서도 미국 사회 진출에 있어 꼭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Soft Skill’은 무조건 사람한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매너나 말을 정직하게 하고, 상호작용을 부드럽게 리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마 전 강연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보통 연설이 끝나고 3번 질문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국 사람이 한 번 질문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바로 ‘Soft Skill’이 없는 것입니다. 한 번 질문을 했으면 다른 사람한테 질문 할 기회를 주는, 남과 나눌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합니다.

- 미국은 ‘Melting Pot’ 이라 불릴 정도로 다민족 다인종 국가인데,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하나요

: 사람과의 관계를 설명한 말 중 제 마음 속에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1987년 제가 일리노이 주지사 특별 보좌관으로 재직했을 때, 하버드 행정대학원에서 연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사업도 매우 번창하고 있던 노비 야마고시란 분을 만났습니다. 저는 어떻게 항상 사람과의 관계가 좋을 수 있냐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들은 말이 “남에게 60%를 주고, 40%만 받으면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노비의 이야기에 따르면 나누려 하지 않고, 자기 것만 챙기려 한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이기고 지는 사이가 아니라 함께 이길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비의 말 처럼 자신의 지적·경제적 능력을 주변 사람들과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 “나는 24시간 일하고, 7일을 일한다”

- 강연하랴, 사람 만나랴, 일 하랴 매우 바쁘실 것 같은데 선배님만의 성공적인 시간관리 전략이 궁금합니다

: 주어져 있는 시간과 자신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보통 저는 낭비하는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아침형 인간이라 일찍 일어나 오늘 해야 할 일과 약속을 고려해 스케줄을 짭니다. 때로는 새벽 2시∼3시에 일어나 사업을 구상하기도 합니다. 잠도 3∼4시간만 자는 편이고요. 저는 일 하는 것이 즐거워 하루 종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만 생각합니다. 일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더라고요. 남들은 TV를 보면서 휴식을 취한다지만, 저는 주로 뉴스나 각 정당의 이슈를 보기 때문에 TV 보는 것도 일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일만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미국 속담에는 ‘Work hard and play hard’란 표현이 있습니다. 즉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라는 뜻이지요. 개인적으로 테니스 치는 것과 오페라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출장을 가서도 오페라 감상을 하거나 일주일에 단 몇 번이라도 테니스를 치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일과 취미 생활을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 선배님께 ‘이화’는 무슨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 저는 메리 스크랜튼 여사 때문에 학교에 입학한 것도 아니고, 막상 학교 다닐 때도 별 관련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자리에 있으니 메리 스크랜튼 여사를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비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편안한 고국을 떠나 가난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나라에 왔다는 것, 여성도 교육 받을 기회와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것. 그의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시대상황에서도 교육받는 여성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낍니다. 아마도 메리 스크랜튼 여사가 없었다면 저 역시 없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테고요. 그래서 제가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맡은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합니다. 이게 이화의 힘이 아닐까요.

- 마지막으로 이화의 대 선배님으로 글로벌 사회에 세계인이 되길 원하는 이화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 무엇보다도 21C가 요구하는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21C가 원하는 것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영어와 컴퓨터 능력입니다. 대학 시절에 이러한 능력을 반드시 키워야 합니다. 또한 세계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작정 해외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한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계 기업이 입사하는 것 등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열심히 일해 능력을 인정 받은 후, 해외 지사로 발령받는 것이 현실적인 최선의 방책입니다. ‘Soft Skill’ 역시 몸에 배도록 습관화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자세를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 약력 >

전신애 여성차관보는 경산남도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여고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71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후, 일리노이 주 이중언어 교육센터와 난민교육 센터 소장 및 복합문화교육연구원장을 지냈다. 일리노이 주지사 아시아 담당 특별 보좌관으로 5년 넘게 일했고, 89년 일리노이 주정부 사상 최초로 동양계 각료로서 금융규제부 장관직에 올랐다. 91년에는 일리노이주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2001년 한국계 미국인으로 최초로 미 연방 노동부 여성차관보에 올랐다. 90년에 ‘자랑스런 시카고 여성상’을 받았고, 노스웨스턴 대학을 빛낸 여성동창생 100인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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