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수) 서울대 황라열 총학생회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한총련이 폭력적인 운동방식과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고수해, 다수 학생의 관심과 괴리됐다는 것이 탈퇴 사유다.

서울대의 한총련 탈퇴 소식을 전하는 각종 메이저 언론의 반응은 뜨거웠다. 관련기사가 연달아 1면을 장식했고, 황라열 총학생회장의 지난 이력까지 보도됐다.

동아일보는 11일자 신문에서 ‘학생활동의 새 시대 여는 서울대 총학’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이번 선언은 학생 자치활동 역사에서 구시대의 종언(終焉)과 새 시대의 개막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면서 한총련 탈퇴에 역사적 의미까지 부여했다.

일부 언론은 이번 사건을 대학생 전체가 보수화되고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세계일보는 16일자 기사에서 ‘대학의 한총련 외면은 운동권의 한계와 대학생 탈정치화를 반영한다’며 ‘이는 사회의 이념 변화와도 연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보수 노선의 선호도가 해가 갈수록 높아진다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가 등장한다.

조선일보의 16일자 류근일 칼럼은 더욱 직접적으로 한총련 탈퇴를 20대 전체의 보수화 경향과 결부시킨다. 첫 문단은 이러하다. ‘유수한 대학들의 총학생회가 한총련과 단절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20대의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도 한다…(중략)’ 문맥상 연결이 어색한 두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칼럼에서 그는, 일부 대학의 한총련 탈퇴를 20대가 보수화 되고 있다는 주장의 한 사례로 삼는다.

이와 같이 언론은 교묘하게 대학생들의 정치적 성향을 규정짓고 있다. 과연 위의 칼럼에서처럼 ‘한총련 탈퇴’를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까. 몇몇 대학의 탈퇴 의사가 정말로 대학생들이 보수화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만한 일인지 의문스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미’와 ‘친북’ 성향이 강한 한총련을 급진적인 단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총련을 탈퇴했다고 해서 이를 ‘진보에서 보수로의 변화’로 분석하는 것은 그야말로 구시대의 이분법적 발상이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가르는 기준조차 모호해진 현재 대학가에서, 학생들의 변화는 더이상 진보 보수와 같은 정치적 성향과 관련이 없다.

단국대 총학생회는 선거운동 당시 한총련 탈퇴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배성수 총학생회장은 “한총련이 가진 이념적 성향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학외 사안보다는 학내 사안에 더 중점을 두기 위한 것”이었다고 전한다.

소위 ‘운동권’이라 불리는 고려대 총학은 현재 한총련에 미가입된 상태다. 그들은 왜 한총련에 다시 가입하지 않는 것일까. 이유미 총학생회장은 “한총련은 비민주적인 소통 구조와 수직적 체계를 가지고 있어 학우들과 소통하는데 있어 효과적이지 못한 것 같다”며 한총련과는 다른 방식의 학생운동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일부 총학생회가 한총련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시도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치적이 성향이 ‘진보’냐 ‘보수’냐를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다. 그런데 언론은 진보-보수의 이분법적인 잣대로 ‘한총련 탈퇴’에 자꾸만 정치적 색깔을 입힌다. 언론은 대학의 자율적인 움직임을 더이상 자신들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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