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었으면 좋겠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월요일, 나는 능숙하게 취재를 한다. TSP니 PM10이니 하는 생경한 단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공대 조교들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다. 기계를 빌리기 전에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기본. 실험을 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도 확실히 알아둔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 혹시나 하고 깜빡, 눈을 감았다 떠본다. 달라질 게 있을 리 만무하다. 이미 먼지량 측정은 물 건너갔고, 다른 부서에 남는 기사가 없는지 알아보는 상황이 됐다. 유종의 미? 지금 나와는 지지리도 안 어울리는 말이다. 화려한 정기자 시절을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끝내다니, 자존심보다 부끄러움이 앞선다.

일주일 동안 취재를 안 한건 아니다. 나름대로 분주하게 보냈는데, 결과적으로는 아무 것도 안한 것 보다 못한 꼴이 돼버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뭘 잘못한 걸까? 처음에는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 운이 좋게 취재가 잘 되는 날이 있는 것처럼, 하는 것마다 안 되는 날도 있지 싶었다. 예를 들어서 이번처럼 기계를 옮겨 놨더니 모터가 고장이 났다거나, 그 기계를 갖다 놓고 다른 기계를 가져다 놨더니 부품이 빠졌다거나 하는 식의. 심지어 이런 일도 있다. 실험을 도와주기로 한 사람이 결과가 나오는 날을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금요일이면 측정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란다. 하루가 더 걸린다는 말도 덧붙인다. 따이시~ 안 좋은 일은 몰아서 온다? 이토록 가슴에 와닿는 말이 또 있을까.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운’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좀 개기기도 했다. 어떻게 되겠지, 내일 해도 될거야... 결국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사라는 건 얼마나 심통 맞는지 나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다. 시험 공부할 때 ‘설마 이게 나오겠어?’하며 그냥 넘어가면 꼭 그게 문제로 나와 애를 먹이는 것처럼 기사도 마찬가지다. ‘이건 그냥...’하고 넘어가면 틀림없이 그게 문제가 된다. 이정도면 되겠다 싶어 멘트를 그만 땄더니 멘트가 부족하다거나,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알 필요는 없겠다 싶어 대충 알아놓으면 그것 때문에 밤새 골머리를 싸매기 일쑤다.


취재는 풍선껌처럼 부풀게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자꾸 잊어버린다. 풍선처럼 ‘펑’하고 터지거나 껌처럼 씹히더라도 어찌됐건 취재는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것에 대해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다. 이번 취재는 훌륭한 기사가 되어 화려한 잉크를 입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웠다. 난 아직 멀었다는 것, ‘날취재’는 어떻게든 부서지게 돼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고 공들인 취재는 기자를 배신하지 않는 법이다. 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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