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대학원관 앞 작은 숲에서도, 학관 앞 사루비아 오솔길에서도 이화의 4계절은 ‘찰칵’으로 시작해 ‘찰칵’으로 끝난다. 사진찍기의 명소가 된 이화정원의 일등 공신은 멋진 배경이 돼준 수많은 꽃과 나무들. 그리고 이런 배경 뒤에는 꽃나무를 자식처럼 생각하는 시설과 강일구씨와 그 팀원들이 있다.


“난 그 질문이 가장 답하기 어렵더라. 가장 좋아하는 꽃, 나무 하나씩 꼽으라는 거” 남들에겐 가장 쉬운 질문이 그에게만은 유독 어렵다. 그에게 이 질문은 열 손가락 깨물어 더 아픈 손가락이 무엇인지 묻는 것과 같다고. 어떤 종류든 꽃과 나무면 그저 사랑스럽단다. 그래서 한뼘 밖에 안되던 나무들이 어느새 자라 제 모습을 찾을 때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그러다 보니 강일구씨의 일년 달력은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쉴새없이 바쁘다. 봄에 맞춰 화단에 옮길 꽃을 키우기 위해 새싹이 날 때, 뿌리가 자랄 때, 줄기가 자랄 때 3번을 다시 옮겨심는 정성을 쏟는다. 태풍에, 가뭄에, 병충해까지 있는 여름엔 꽃자식과 나무자식 걱정에 늘 노심초사한다. 가뭄때는 전체 학내 수목에 일일이 물을 줘야하기 때문에 팀 전체가 1주일을 꼬박 물주기에 매달린다.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것이 ‘천직’이라는 그는 끊임없이 이화교정에 변화를 시도해왔다. 25년 전 그는 계절에 따른 아름다움을, 가을이면 결실을 맺는 풍요로움을 이화에 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열매를 맺는 유실수 심기. 그 중 본관·약학관·대학원관 앞의 석류나무는 그의 야심작이다. 봄에는 야외 햇볕에서 겨울이면 다시 온실로 들여와 키우기를 10여 년. 그렇게 25년이 지난 지금 석류 알맹이의 굵기는 10센치나 돼 탐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그는 본교 입학생과 졸업생에게도 사랑받는 원예사였다. 1970∼80년 당시, 입학·졸업식 장식에 쓰인 꽃은 개나리 가지를 꺾어다 놓은 것이 전부였다. 그것을 본 그는 철쭉을 키워 부임 첫해 졸업식장을 화사하게 꾸몄다. 그는 “떠나가는 학생들에게 어떤 대학 졸업식보다도 예쁘고 화사한 모습을 전해주고 싶었다”며 이야기를 풀어놨다.


그는 10년전 온실이 옮겨진 일이 가장 아쉬운 일이라고 회상했다. 당시 SK텔레콤관 자리에 있었던 온실은 학생들과 교수·교직원들 사이의 인기 명소였다. 직접 그에게 국화분재를 가르쳐 달라며 조르는 학생도 많았고 집으로 전화해 원예를 배워보고 싶다며 찾아온 학생도 있었다고. 그러나 북아현문 쪽의 학내 외진 곳으로 온실이 옮겨지면서 온실이 있는 것조차 모르는 학생이 많아 아쉽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바람은 소박하다. 그저 넓지는 않아도 이화의 모든 식구들이 자주 볼 수 있는 곳에 표본온실을 만들어 예쁜 꽃과 나무를 함께 보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 좀 더 욕심을 내자면 건물 보다 학내 곳곳에 녹지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소망이다. 그는 “70년대는 건물보다 숲이 더 많았는데 지금은…”이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당시에는 건물보다 큰 숲이 많고 지금의 조형예술대와 체육과학대학 쪽에는 나무들을 벗 삼은 정자들도 있어 학생과 교수들, 교직원들의 쉼터로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건물 증축과 ESCC 공사로 학교 곳곳의 나무들이 벌목됐다. “20∼30년간 키운 나무들이 잘려나갈 때 마음이야 말로 다 표현 못하지…” 라는 그의 말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는 요즘 큰 숲을 대신해 학내 곳곳에 야생화와 풀꽃을 심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하고 있어. 잘 보면 작은 화단에 신기한 꽃들이 많다니까”라며 손수 심은 풀꽃을 내보였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는 기자에게 꽃을 선물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우면 아주 예쁘게 클 것이라며 물주고 관리하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 아가 예쁘게 키워달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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