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의 금요일보다 더 끔찍했던 12일의 금요일
13일의 금요일보다 더 끔찍했던 12일의 금요일
  • 김혜윤 기자
  • 승인 2006.05.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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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보사 친구들은 금요일을 제일 두려워한다. 다름 아닌 마감 때문이다. 금요일을 제외한 한 주는 시간이 정말 빨리 흐르는 것 같은데 얄궂게도 금요일만큼은 시간이 느리게 간다. 12일(금), 오늘도 역시 금요일은 다가왔고 마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마감은 다른 때와 달리 특별했다. 아니, 특별한 것이 아니라 충격적이었다.

5월11일(목)

이전엔 목요일에 초고 쓰는 것이 힘들지 않았는데, 휴간 후부터는 쉽지가 않다. 2주라는 기간 동안 게을러진 탓일까. 이때만 되면 금요일에 마감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4일간의 짧은 취재로 기사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온갖 긴장감이 몰려온다. 계속되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마음은 물론 몸까지 피로해져 목요일 밤엔 자정을 넘기지 않았는데도 눈이 저절로 감기고 만다.

이번 주는 다른 때보다도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취재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리포트와 팀플까지 겹쳤다. 정말 이럴 땐 학교 오는 것 자체가 싫어진다. 으 골치 아파. 거기다 오후엔 취재까지……. 늦은 취재를 끝내고 나니 저녁7시. 과연 내일 마감을 잘 끝낼 수 있을지 불안감이 엄습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제를 하다가 결국 기사도 못쓰고 하룻밤을 그냥 보내고 말았다.

5월12일(금)

드디어 금요일. 이날은 수업이 2교시 하나밖에 없어 나머지 시간을 기사 쓰는 데 전념할 수 있다. 오늘도 역시 수업 후 기사를 쓰기 위해 수첩을 꺼내려는 순간, 어라 수첩이 어디 있지? 가방 안을 다 뒤져보고 책상위도 훑어봤지만 수첩은 어디에도 없다. 어젯밤 취재를 마치고 집에 갈 때 내 품에 꼭 안고 갔었는데. 당황스럽다. 초조해지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침착하자. 내가 어제 수첩을 어디에 놨더라? 집에 있나? 취재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갔으니 집에는 있겠지. 집에 가보자.


겁 학교를 뛰쳐나와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해 내 방은 물론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집에 들어온 엄마까지 놀라 같이 찾아주셨지만 집안에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없어지면 큰일 나는데. 취재했던 내용들이 다 사라졌단 생각에 내 얼굴이 새파래졌나보다.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쳐다보신다.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내 가슴은 콩닥콩닥 도무지 진정되지가 않는다.

멍해져가는 기억을 추스르고 어제 집에 오는 길에 지나쳤던 길을 생각해본다. 친구랑 얘기를 하기 위해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길을 되짚어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 봤다. 잠시 들렀던 상점과 버스카드 충전소까지 다시 가보았다. 가게 주인에게 수첩을 봤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혹시 보면 연락해 달라고 연락처까지 남겼다. 있을 만한 곳은 다 가보았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다. 2시간가량 온 거리를 휘젓고 다녀서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몸에선 땀이 흘러내렸다. 순간 눈물이 났다. 정말 불안하고 걱정됐다. 내 잘못 때문에 마감에 차질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언니들한테도 혼날 것 같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꼭 시험 답안지를 백지로 냈을 때의 기분이랄까(백지로 낸 적은 없지만, 정말 최악의 기분일 것 같다).

터벅터벅 힘없이 학보사로 향하는 길에 부장 언니를 만났다. 내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걱정스레 물으셔서 수첩을 잃어버렸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렸지만 언니는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걱정해주셨다. 정말 고마웠다. 위로의 말에 곧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그래, 수첩은 없어졌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어. 곧 마음을 다잡고 내 기억력을 더듬기 시작했다. 뒤죽박죽 내 머릿속에 저장돼 있던 취재 내용들을 하나 둘 끄집어내 짜맞춰나갔다. 다행히 어제 한 인터뷰는 생생하게 기억났다. 정말 부끄러웠지만 잘 생각나지 않는 부분은 취재원들에게 다시 전화해 재 취재를 했다. 그로부터 3시간 동안 죄송하다는 말이 입에서 떠나질 않았다.

다행히도 내가 맡았던 기사 두 개 모두 무사히 완성됐다. 수첩의 부재(不在)를 확인한 순간부터 초고를 쓸 때까지의 7시간 동안 난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늘처럼 ‘제발 꿈이었으면’ 할 정도로 끔찍했던 순간도 없었던 것 같다.(7시간 동안 나는 하나님을 여러 번 찾았다. 평소엔 기도도 잘 하지 않으면서) 비록 무사히 넘길 수 있었지만 오늘 있었던 사건은 평생의 교훈으로 기억될 것이다. 내 작은 실수 하나로 인해 발생했을 엄청난 불행에 대해선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하니까. 앞으로는 취재수첩을 정말 내 목숨처럼 소중히 갖고 다녀야겠다. 그것도 가방 안에 고이 모신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