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 닮은 미인대회’가 열리고 초코파이가 불티나게 팔리지만 정작 우리는 동남아에서 불고있는 ‘한류’를 미심쩍어 하죠. 왜 그럴까요?”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한류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세계사에서 한국 문화의 새로운 위상’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한류열풍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인의 무의식에는 반만년 역사라는 ‘자긍심’과 중국에서 문화를 수입해 왔다는 ‘열등의식’이 대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도한 자긍심과 불필요한 열등의식을 교정하기 전에는 한류를 바로 인식하기 힘들다며 극복책으로 ‘세계사 속에서 한국사 읽기’, ‘중심부 문화와 주변부 문화의 관계 이해’를 제시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르네상스는 독일·프랑스·영국 등 주변국가로 수용됐지만 이들의 문화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르네상스가 퍼져나감으로써 유럽의 학문과 예술은 풍부해졌다고 평가된다. 유 청장은 “한국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 또한 이런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트남·일본과 함께 중국 문화를 흡수해 주체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동아시아 문화를 살찌웠다는 것이다.

그는 도자기의 발달사를 예로 들며 “한국은 문화 발전소가 아닌 문화 변전소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기를 최초로 발명한 것은 중국이지만 청자에 문양을 새긴 것은 고려라는 것이다. 4세기 무렵 고월자라는 초기 청자를 시작으로 10세기에는 완벽한 비색청자를 만든 중국. 우리는 비색청자를 모방해 고려청자를 탄생시키기까지 백년이나 걸렸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문양을 새기지 못했던 중국 청자의 약점을 보완해 상감청자의 길을 열었다. 유 청장은 한국문화의 정체성은 이처럼 보편적인 문화흐름 속에서 독자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문화가 물 흐르듯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는 ‘문화 전파론’을 부정했다. 문화의 전파는 일방적이거나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부 문화의 주체적인 수용이라는 것. 그는 오히려 한국이 중국의 문화를 끊임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낙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의류 혁명을 위해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을 두고 “도둑질을 하면서까지 선진 문화를 따라가고자 했던 피눈물 나는 역사”라고 말해 청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한류 역시 주변국의 주체적인 선택으로 보고 있다. ‘문화 발신국’인 우리가 의도적으로 기획한 것이 아니라 ‘문화 수신국’인 그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고.

또 무엇보다 왜 한류가 일어났는지에 대해 한류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스스로 ‘한국문화는 그리 대단하지 않아’라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어떤 면을 그들이 동경하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유 청장은 “그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한류는 한국의 고유문화가 아닌 현대의 대중문화”라고 밝혔다. 그들은 친숙하지 않은 서구문화 대신 ‘문화 변전소’ 한국에서 재창출한 대중문화를 즐기며 모방한다는 것이다. 한국문화의 독특한 기능을 설명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단군 이래 처음 맞은 이 호기회를 일시적 풍조로 끝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를 위해 ‘일방적인 전파’가 아니라 ‘국가간의 교류’ 차원에서 한류를 진행해야 한다며 “한류수입의 1%만이라도 베푸는 것은 우리의 기본임무”라고 전했다.

참여정부 출범 당시, 동아시아 물류 중심 국가를 지향한다는 공식선언을 듣고 물류의 ‘ㄹ’ 받침을 ‘ㄴ’으로 바꾸고 싶었다는 재치있는 입담의 유홍준 문화재청장. 그는 문류가 잘 돼야 물류로 지속 가능하다고 강조하며 유쾌한 강좌의 막을 내렸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