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같던 휴간이 시작됐다. 제작 중에는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학보사지만 이번 휴간에는 절대로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름의 결심을 지키려고 자연스럽게 학보사로 향하는 발걸음을 억지로 돌려세운 적도 여러 번이다. 책상에 두고 온 책을 가지러 가거나 공강시간이 되면 으레 찾는 곳이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독하게 마음먹었다. 아무리 시험기간이라도 이번 휴간만큼은 실컷 즐기리라! 학보사에 있던 책도 친구 사물함으로 죄다 옮겨놓고 평소엔 잘 가지도 않던 과방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왠지 불편하고 찝찌름한 이 기분은 뭘까. 뭔가를 두고 온 것 같기도 하고 생활관 수업이 있을 때면 그 입구에서 주춤하게 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휴간이 끝나자 다시 찾은 학보사는 썰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이 화창한 봄날에 을씨년스럽다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빼꼼히 열어본 학보사 풍경은 정말이지 황량하기까지 했다. ‘나 뿐만이 아니었구나’ 싶어 왠지 다행스러웠다.


이곳 사람들은 학보사를 빗대어 흔히 ‘애증의 공간’이라고 한다. 애(愛)와 증(憎)의 극단적인 감정은 오가는 기분은 직접 느껴본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모른다. 나도 처음에는 애증이란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지 ‘애’와 ‘증’이 어떻게 함께 묶일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온몸으로 절실히! 느끼고 있다. ‘애’도 정확히 50%, ‘증’도 50%. 양 극단의 감정에서 시소놀이를 하기란 쉽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하지만 이쯤 되면 학보사에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사실 수습 땐 ‘증’을 잘 느끼지 못했다. 마감을 하며 가끔 뛰쳐나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동기들과 함께 뛰어노는데(?) 정신이 팔려 일종의 놀이터라고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정기자가 되면서 ‘증’의 정도는 나날이 높아졌다. 부서별로 맡고 있는 기사들의 성격도 다르고 저마다 바빠 서로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이렇듯 동기들과의 만남은 점차 줄어드는데 기사에 대한 압박은 커져만 갔다. 학보사는 나에게 있어서 온갖 미운털이 박힌 그야말로 ‘밉상’이었다. 휴간 중에는 절대로 찾지 않으리라 결심에 결심을 했지만 저절로 학보사로 향하는 날 발결한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애’인지 ‘증’인지 간에 왠지 가봐야 할 것 같고, 저절로 발걸음이 향하는 나를 자책하게 만드는 그 곳. 우리는 그 곳을 ‘이대학보사’라 부른다. 남은 2학기 “미운정 고운정 팍팍 든 학보사야, 앞으로 더욱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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