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찾는데만 3개월... 겨울 내내 아진과 혜은에 빠져살아

서수진씨는 인터뷰 시작 전 심사평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그의 눈빛은 담담했지만 입가에 흐르는 잔잔한 미소는 감출 수 없었다. 서수진씨는 “아직 소설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완성도 높게 봐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다”라며 환히 웃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싶다는 제 1회 이화글빛문학상 수상자 서수진(국문·06년졸)씨를 이대출판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아티스트 아진과 남편의 기일에 자살을 시도하려는 혜은. 소설 ‘꽃이 떨어지면’은 이 같은 정반대의 두 여성이 만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이 소설의 주제를 정하기 위해 3개월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내가 가장 하기 힘든 말이 무엇일까. 그러나 가장 해야만 하는 말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쉽게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와 그 사이에 얼기설기 얽혀있는 감정들을 드러내야 하는 소설 작업은 힘들었다고. 이처럼 작가 서수진의 솔직한 감정들을 품고 있기에 소설 ‘꽃이 떨어지면’은 독자들의 가슴에 더 깊이 와 닿는다.

자신의 상처만을 보듬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상처 준 상대방의 아픔을 헤아리는 과정. 그것이 바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라고 작가 서수진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다. 마치 주인공 혜은이 죽은 남편에 대한 상실감으로 가득차 있다가, 남편이 겪었던 아픔을 발견하는 순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듯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소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사람과 사람을 엮어놓는 보이지 않는 끈은 엉켜서 자기 혼자 끊는다고 끊어지는 게 아냐. 그 애 엄마가 끈을 끊었어도 그 애가 못 끊듯이. 그 애가 끊었어도 내 아내가 못 끊듯이’ 아들(혜은의 죽은 남편)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아버지가 하는 말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나이의 작가가 나이 지긋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관계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소설을 읽을 때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써보았어요”라는 서 작가의 말처럼 ‘꽃이 떨어지면’은 어떤 영상을 글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시각적, 청각적 장치를 통해 영상적인 표현을 극대화했다. 아진이 데이지 꽃을 그리는 서양화 작가라는 점과 아진의 집에서 매일 흘러나오는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이 바로 그것이다.

자고 있을 때도, TV를 보고 있을 때도 머릿속에 아진과 혜은이 떠올랐다는 서수진씨. 제 1회 글빛문학상 수상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소설을 쓰는 내내 집에서 탱고 음악을 들으며 유화로 서양화를 그렸어요. 아진처럼 꽃을 많이 그렸죠.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쓸 수가 없으니까요”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서양화를 전공하는 학생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색채의 설명과 유화를 그리는 과정의 묘사가 세세하다. “머릿속으로 생각해내고 상상해서 쓸 수도 있지만 내 손으로 느껴지는 것, 내가 냄새 맡는 것, 내 눈으로 보는 것을 쓰지 않으면 글이 디테일하게 나올 수 없는 거죠” 이런 까닭에 작가는 전시회 오프닝도 많이 가보고 실제로 납골당을 여러번 다녀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진과 혜은에게 몰입해 지냈던 시간이 당시엔 매우 끔찍하게 여겨졌습니다. 사람도 만나지 않았고 끊임없이 괴로운 감정을 파고들어야 했죠.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그렇게 어두운 시간을 통해 아진과 혜은이 그리고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진과 혜은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서로가 가까워졌을 때, 비로소 작가의 상처도 아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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