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부장 이가진

왠지 모를 막연한 낭만을 품게 하는 나라 프랑스. 개인의 자유와 권리, 또 평등 실현의 시발점이 되었던 1789년 프랑스 혁명이 그 낭만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헌데 최근 TV에 비친 프랑스에는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다. 프랑스 지성의 상징 파리 4대학(소르본대학) 학생들을 비롯한 80여 도시의 최소 25만명 대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시위에 나선 것이다. 누가 이들을 강의실 밖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거리로 내몰았을까.

학생들이 거리로 나선 까닭은 지난 9일(목) 프랑스 의회에서 통과된 청년실업해소법안 때문이다. 이 법안의 핵심인 최초고용계약(CPE)은 고용주가 만26세 미만의 직원을 정식으로 채용하기 전 2년의 수습기간을 두고, 이 기간에는 자유롭게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한번 채용하면 해고가 어려운 현재의 경직된 노동시장을 완화해 기업의 신규채용을 늘이고, 23%에 달하는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내놓은 초강수다. 이러한 법안이 노동자와 예비노동자인 대학생들에게 달갑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 그들은 CPE가 고용불안을 가중시킬 것이며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풍경이 낯설지만은 않다. 우리나라도 그와 유사한 비정규직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기간제 법안(기간제·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안)'은 ‘기간제 근로를 2년 이상 했을 경우 무기계약근로(정규직)로 간주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볼 때 2년 주기의 반복적인 해고가 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고용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CPE와 유사하다.

이같은 일련의 흐름은 전 세계가 실업해소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한 진통을 앓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고용주와 정책입안자들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곧 있으면 노동시장에 진출하게 될 대학생의 입장에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제도일 뿐이다. 프랑스대학생연합(UNEF) 회장 브뤼노 쥘리아르의 말처럼 물 한 컵으로 숲에 번지는 불을 끌 수는 없다.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는 23일(목) 오후1시 노무현대통령이 국민과의 ‘접속’을 시도한다고 한다. 5개 포털 사이트를 통한 패널들과의 토론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다는 것. 이에 앞서 한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하고 있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을 묻는?설문조사에서 30.4%인 1835명(18일 기준)의 국민이 고용창출 및 안정이라고 답했다. 국민들이 가장 절감하고 있는 어려움이 바로 고용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용안정은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동력이 된다. 멀리 바다 건너 나라만의 문제도,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파리의 대학생들은 그들 사회의 문제가 언젠가 자신들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에 비해 서울의 대학생들은 그런 의식이 부족한 듯 싶다. 우리 역시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부터 노동시장에 내던져진다. 그제서야 비정규직문제가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너무 늦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당장은 따뜻한 온실이더라도 혹한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명실공히 차세대 경제주체가 될 대학생들이 좀 더 적극적이고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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