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에 관련된 모든 일을 맡은 주차관리요원 [김하영 기자]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이화여자대학교부속병원(이대목동병원). 통원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하늘이 어스름해지던 19일(일) 저녁, 낮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붐볐다. 저녁 드라마가 한창인 10시 경 환자복 차림의 사람들과 보호자들이 로비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이 맡은 일에 정신없이 매진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이들이 병원을 굴러가게 하는 숨은 원동력이었다.


보안원 김준형(25)씨는 후문 입구에 깍듯한 자세로 앉아 업무를 보고 있다. 저녁6시부터 오전8시까지 14시간 동안 꼬박 근무하다보면 가장 힘든 것이 졸음을 쫓는 일이란다. 보안원들이 하는 일은 출입자를 관리하는 것. 거동이 수상해 보이는 사람들을 제지하는 것이 주 업무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차를 어디에 해야 하나요’ 등 주차와 관련된 질문들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마다 “저희는 주차업무를 하지 않습니다”고 정중히 답한다고. 대신 그는 건물 밖에 있는 주차관리 요원을 찾아가라고 일러준다.


일반 버스 및 택시 출입, 방문 차량, 병원셔틀 버스, 구급차량, 장례식장의 발인 차량까지 ‘차’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관리하는 주차관리요원들에겐 3월의 밤공기가 여전히 차다. 잠시도 쉴 틈 없이 들어오는 차 때문에 항상 사무실 문을 열어놔야 할 지경. 두 개의 난로가 그나마 추위를 이기게 해준다. 하얀 면장갑을 끼고 출입 차량의 운전자에게 늘 ‘두 손으로’주차권을 건네주는 김경배(58)씨.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잘못 들어선 사람들에게 “장례식장은 유턴해서 나간 다음, 저쪽 오른쪽 길로 들어가면 보이는 건물입니다”를 여러 번씩 반복한다. 낮에는 주차타워 건물 전체를, 밤에는 이렇게 출입구를 관리하는 그가 미소를 잃지 않는 이유는 ‘이곳이 내 인생의 마지막 직장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기 때문’이란다. 병원은 아픈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 기분 좋게 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의 말. 그것을 이해하기에 ‘오장 육부 쓸개를 다 빼고 혈압 오르는 것도 참고’ 일한적도 많지만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말 하나에 힘이 나 다시 자리를 지킨다고 한다.


병원 입구가 술렁이는가 싶더니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응급차가 달려온다. 응급실은 24시간 ‘항시대기’인 곳. 이를 관리하는 보안원의 어깨도 더 무겁다. 외래 진료가 있는 낮 시간보다 밤이 더 붐비고 힘든 것이 사실. “정말 응급환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밤에는 고성을 지르고 행패를 부리는 손님들을 달래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하는 보안원 문준식(25)씨. 짙은 남색 제복에 한 쪽 귀에는 무전기 이어폰이 꽂혀있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다. 심하게 다친 환자들을 볼 때 힘든 점은 없냐는 질문에 “전 비위가 센 편입니다”라며 씩 웃어보인다.


교육과 훈련이 잘 된 보안원들이야 견디기 수월하겠지만, 응급실 청소를 담당하는 미화원 성희순(62)씨에게는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여기 응급실은 이틀도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구역이야. 지금이야 좀 익숙해졌지만 처음 며칠은 가슴이 떨려서 밥도 잘 못 먹었어” 팔이 잘리고 내장기관이 다 보일 정도로 다친 사람들을 수없이 봐야하는 이들, 피투성이가 된 바닥을 쓸고 닦노라면 그만 두고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고통스럽단다.


병의 치료가 무엇보다 우선인 병원이지만 아무리 어렵고 급한 상황이어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진료비다. 그러니 응급환자들의 진료비를 접수하는 수납창구 역시 밤새 쉴 틈이 없다. ‘준비 안 된’ 사람들이 많은 곳이 응급실일 터, 진료비를 받는 입장에서도 어려운 점이 많다. 특히 이대목동병원은 주택가에 위치해 다른 병원보다 응급환자가 더 많은 편이란다. 벌써 13년째 병원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희정(34)씨의 설명이다. 오랜 시간 야간 근무를 하다보니 생활리듬이 깨져 자주 피곤하고, 야식으로 살도 붙는다며 푸념한다. 그는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오히려 제 건강은 챙기기 힘들어요”라는 한숨섞인 한마디를 덧붙인다.


응급실 앞 보호자 대기 구역에는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근심어린 표정으로 서 있다. 옆에는 피해자의 어머니와 가해자의 어머니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들어보니 상대방을 탓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알아보면 아시겠지만 제 아들이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라는 병이에요. 정신과도 다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렇게 눈이 퉁퉁 붓도록 때린단 말이에요, 당장 학교도 못가게…”“오죽하면 저도 매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겠어요. 스스로 절제가 안 되는 아이입니다. 여기 신문기사도 있어요” 죄지은 표정으로 꼬깃꼬깃 접어둔 신문조각을 펼쳐 보인다.


심각한 주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보호자 대기실 텔레비전에서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방청객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아무도 그 화면에 눈길 주는 사람은 없다. 이대 목동병원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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