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융한 기자의 민망한 취재
음융한 기자의 민망한 취재
  • 김혜인 기자
  • 승인 2006.03.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못다한 이야기 월요일 편집회의 시간 1시간 전, 문건 복사는 정기자의 몫이다. 이번 주 기획은 무엇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종이를 펼쳤다. ‘누드크로키 스케치 기사’가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다. ‘아, 이거다’싶었다. 물론 누드라는 단어가 내뿜는 선정성에 끌렸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결국 누드크로키 기사를 거머쥐고야 말았다. 드디어 취재하는 날.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취재 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신성한 취재를 하러 떠나는 정기자의 속마음은 시커멓기 그지없었다. 오로지 머리 속은 ‘정말 완전히 벗을까? 남자일까, 여자일까?’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너무 흥분했던 탓일까. 급기야 조형예술관으로 간다는 것이 이화­포스코관으로 가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 때 스터디그룹 회장으로부터 온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문을 잠궈야 하거든요’라는 메세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미친듯이 6층을 뛰어올라갔다.

 헉헉대는 숨소리를 감추지 못한 채 뛰어들어간 정기자 누군가와 떡하니 대면했으니. 조금은 진한듯한 화장에 살랑거리는 가운을 입은 여자. 또 한번 ‘아, 이분이 모델?’이라는 기자의 직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정말 벗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상상하기가 부끄러웠다.

 이날 나에게는 한 가지 의무가 있었다. 기사에 실을 누드 크로키 장면 사진에 대한 그의 동의를 얻는 일이었다. 다시 한번 그를 흘끗 쳐다보았다. 하늘거리는 가운의 주인공은 음악을 틀고, 알람을 맞추는 등 벗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벗은 몸을 사진에 담아도 될까요’라는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두눈 질끈 감고 그에게 성큼 다가가 “사진 촬영을 해도 될까요?”라고 말했다. 단지 나는 기사에 이용하려는 것일 뿐인데 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조금은 도도하게 생긴 그의 입이 ‘안 돼요’라고 말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럼요, 물론이죠” 그는 입을 활짝 벌린채 웃고 있었다.

 사진 촬영을 허락한 후, 그는 유유히 자리로 돌아가 걸치고 있던 가운을 벗었다. 카메라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이라도 하고 있다는 듯이, 근육이 잘 살아나는 역동적인 포즈를 유감없이 선보이는 것이었다. 아무리 직업이라 할지라도 여자가 몸을 카메라에 내보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그는 크로키가 진행된 2시간 동안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어떤 포즈에서도 당당한 그의 모습을 얼이 빠진 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기자가 자신의 취재에 흥미를 가지고 임했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분명 나의 태도는 불순했다. 어쩌면 나는 그에 대해 떳떳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이름도 없는 빨간 비디오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정말로 부끄러운 것은 발가벗은 그녀의 몸이 아니라, 시커먼 색안경을 낀 나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