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소에 가기 전, 책날개에 새겨진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바싹 긴장했다. 사진 속 ‘작가 정미경’의 눈매는 날카롭다. 여느 사람과는 확연히 다른 사고와 감성으로 독자 위에 군림할 것만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그에게선 제주도·도쿄 등지로 훌쩍 떠나 작품을 쓴다는 전업 작가들과 는 다른 ‘생활인’의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의 서두에서 “황량한 식탁을 견뎌준 내 새끼들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밝힌 그는 자신을 ‘아줌마 작갗라 칭한다.

80년대 초반, 어지러운 시대상황 속에서 대학을 다닌 그. 계속되는 휴교령 때문에 수업보다 휴강하는 날이 더 많았단다. 어떤 이들은 격렬한 데모 현장에 몸을 던졌고, 다른 이들은 예쁜 옷을 입고 4년 내내 선을 보러 다녔다고.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저 소설을 읽고 글을 쓰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뎌 냈다”며 학창시절을 담담히 회상한다.

학생 시절부터 이대학보사가 주관한 이화 문학상·이화 100주년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건 5년 전부터다. 그 동안은 두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일상을 묵묵히 견뎌냈다. 때문에 그를 이끄는 것은 강렬한 사건보다는 소소한 일상이다. 그에게 풍기는 ‘생활인’의 냄새. 그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발표만 안했을 뿐이지 주부로 살던 동안에도 작품은 차곡차곡 써왔다. 그러나 아들 책상 옆에 노트북 컴퓨터를 마련해 놓고 ‘구박 받으며’ 7년간 써온 글들은 2001년, 컴퓨터 고장으로 한 순간에 사라졌다. 허망하고, 또 허망했지만 때마침 일어난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거짓말처럼 무너지는 것을 밤새도록 보며 간신히 그 ‘허무’를 극복했다고. “작품들이 날아가지 않았더라면 곶감 빼먹듯 써둔 것을 하나하나 발표하며 편하게 살았겠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었기에 그는 이제 컴퓨터의 고장에도 감사할 수 있다.

이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기분으로 꾸준히 글을 발표한 그는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2006 이상문학상 수상자’라는 수식어가 더해진 그에게 독자들은 완벽한 소설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또 작품 내용을 곱씹어 보면서 그가 작가로서 ‘완벽함’과 ‘최고’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그는 완벽을 싫어하지 않을까.

<밤이여 나뉘어라>의 주인공 P도,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의 윤희도 ‘그토록 꿈꾸던 원더랜드’에 도착하지만, 즉 삶에 있어 최고의 정점에 이르지만 행복하지 않다. 그는 “인생에서 완전한 것이 과연 중요한가요? 불완전한 것도 삶이고, 또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이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스스로 터득한 사실이라고. 그렇기에 그는 이화의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끝내 이루지 못할 꿈을 꼭 하나씩은 간직한 아름다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 말을 할 때의 그는 주부도, 아내도 아닌 ‘작가 정미경’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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