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경험했던 지독한 괴로움과 비극적 추억을 가슴에 새겨 소설로 그려냅니다"

「밤이여, 나뉘어라」로 제 30회 2006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정미경 작가. 본교 영문학과를 졸업, 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한 이후 2001년 세계의 문학에 「비소여인」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는다. 이화 백주년 기념문학상, 2002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아쉬운 거 없이 사는 얄미운 년들이 뭘 알아” 한 토막 부러움도 비겁한 시기도 섞이지 않은, 순전히 인생이 잘 풀린 인간들에 대한 연민. 다 가진 인생보다 슬픔과 고통 속에 성장하는 인간을 작품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작가 정미경(영문학·81년졸). 14일(화) 티타임의 여유와 학구적 욕망이 묘하게 어울린 프린스톤스퀘어(PRINCETON SQUARE)에서 인간 정미경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욕망(欲望)

인간 안에 있음에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휘둘리는 욕망을 그는 ‘재밌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병적인 욕망을 가진 사람도 있고 아닌 척 힘겹게 다스리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욕망의 모습은 형태가 무궁무진해 그의 작품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소재가 돼버렸다.? 특히 그의 작품 속 여성들은 이데아를 향한 욕망을 보여준다. 그는 인간의 욕정을 해피엔딩의 공허함으로 마무리하는 대신 ‘근근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이데아라는 욕망을 쫓다가 부딪히는 난관을 ‘근근이’ 견뎌내는 것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결코 강하지도 나약하지도 않게 말이다. ‘근근이’는 글쟁이인 그에게 여지없이 작품으로 연결된다. 현실에서 욕망으로 인해 입은 상처를 소설로 소화해 버린 것. 행복은 어쩜 소설가에게 독인지도 모르겠다.

◆비운(悲運)

 “그 때 행복했다면 당시 상황들이 가슴을 후벼 파고 들어오지 않았을 걸…” 「밤이여, 나뉘어라」의 배경인 북구는 작가 정미경이 인생의 고비에 직면했을 때 여행했던 곳이다. 밤이 되도 해가 지지 않는 북구의 백야와 노르웨이 오슬로의 해안가가 찬란하도록 슬프게 표현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 그 때 괴롭지 않았다면 소름 돋치는 절경들이 이토록 오래 남아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불완전한 삶은 오히려 그를 ‘불안전해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게 해줬다. 삶에 있어 이뤄 논 것이 뭐 그리 대단하랴. 이루지 못한 것은 이루지 못해 의미가 있는 법. 그는 꽉꽉 채워진 플롯(plot)에서 벗어나 흐린 물에 물감을 떨어뜨린다는 느낌으로 「밤이여, 나뉘어라」를 그려갔다. 과거라는 건 ‘비극’적인 추억마저도 웃음 짓게 해줄 수 있나 보다. 열아홉 살, 처음 객지 생활을 시작하며 겪었던 ‘비극적인 밥상’의 서러움은 곧 단편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의 모델이 된다. 야박한 하숙집 주인의 인심에 울고 밥상 앞에서 눈물을 훔쳐야 했던 당시는 소설을 쓰기위한 장치였는지도 모르겠다. 행복해선 절대 얻을 수 없는 세상의 장치는 그를 소설과 연결하고, 소설의 인물들은 그와 고리처럼 얽히게 된다.

◆투영(投影)

 ‘오래전에 읽은 책을 펼쳐보면 붉은 색연필이나 심이 두터운 연필로 밑줄을 그은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어떤 건 다시 읽어보아도 왜 밑줄을 그었을까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문장도 있다. 사람도 그러하다’­「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中 “좋은 글귀를 적어놓고 곧잘 잃어버린다. 혹 나중에 보더라도 왜 이런 글귀가 인상적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람이 처한 환경과 그걸 받아들이는 가슴은 계속 변하는 거니까”­14일 인터뷰 中 작품 속에서 ‘나’의 표피를 드러내는데 인색했다고 말하지만, 소설에는 그가 끊임없이 투영돼 있다. 사적인 얘기를 꺼리는 모습조차도. ‘정미경’은 책 속에서 숨쉰다. 그리고 미각이 분화하는 것처럼 책과 함께 성장한다.

 ◆미각(味覺)

“자식 놈이지만 참 한심할 때가 있다” 그는 말초적인 것만을 본다는 아들을 유치하고 단순하다고 표현한다. 어디 그의 아들 뿐이랴. 사이버 세계의 현대인들은 복잡한 걸 감당하지 못한다. 그는 미각을 닮으라고 말했다. 어릴 때 우리의 미각은 단것만 좋아한다. 슈퍼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울며 떼쓰는 아이들이 무엇에 유혹된 것이겠는가. 하지만 나이가 들면 뜨거운 맛 속에서 시원함을 찾는다. 쓴 맛 속에서 깊은 맛을 발견하기도 한다. 세월은 미각을 점점 분화시키고 어릴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한 맛을 시여한다. 책도 마찬가지 맥락이란다. 재미있는 글도 좋지만 깊이 있는 글은 삶의 단맛·쓴맛·신맛·감칠맛에다 ‘+α’까지 주기 때문이다. 삶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을 읽지 않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틀림없는 손실일 거라 단언했다.

◆후(後)

 10년 후 어떤 작가이고 싶냐는 질문에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말로 답을 대신한다. “좋은 목사는 몇만 명의 사람을 끌어 모을 정도로 매력적인 설교를 하죠. 그건 바로 설교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에요. ‘아 나를 위해 저 말씀을 준비해 주셨구나’ 바로 이런 것” 어떤 재료를 갖고 요리를 시작하든 그는 독자의 가슴에 얹히는 글을 쓰고 싶다 했다. 침대 옆에 두 줄로 책을 쌓아놓고 독자로서의 인생을 함께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늦깎이 작가 정미경. 그가 몇백만 명의 독자들을 끌어 모으는 훌륭한 설교자인 동시에 평생토록 책과 함께하는 독자로 남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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