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못다한 이야기
나의 못다한 이야기
  • 박혜진 기자
  • 승인 200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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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만만치 않은 곳이에요. 깡이 있는 분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부서 역분을 앞둔 수습들에게 사회부 부장이 했던 말이다. 자신 있었다. 그 정도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가지 않아 들통 날 ‘철없는 오만함’ 이었다. 나의 첫 못다한 이야기는 사회부 정기자가 되고 두 달 동안 겪었던 ‘질풍노도’ 엑기스 공개다. 아,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그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는 유치찬란한, 그러나 눈물겨운 결말을 맺었기 때문임을 먼저 밝혀둔다.


사회부는 방학 동안 많은 곳을 탐방한다. 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가 미처 관심갖지 못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환경단체·여성단체·정치단체·대학생단체·교육단체, 그리고 경제단체까지 여러 곳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실제로 다녀왔다. 그런데 경제단체가 문제였다. 다른 곳에 비해 명백한 비영리 집단인 전경련은 도대체 뭐가 알고 싶어서 오려고 하냐는 질문을 반복했다.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그래도 돌아오는 대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냥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죠?”


뭐 이런 인간이 있나 싶었다. 성격 같아서는 그냥 욕이나 한 사발 해주고 전화를 끊고 싶었다. 적어도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래, 그때까지의 심정은 화, 분노, 뭐 이런 특별할 것 없는 감정들이었다. “정 오고 싶으면 공부를 좀 하고 오든가. 전경련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요?” 제기랄, 약속 잡으면 공부하려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뭐라고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다시 전화 드리겠다 말하고 수화기를 내려놨다. 그 날 밤, 나는 밤 새 전경련 홈페이지에서 연혁부터 활동내용, 쓸데없는 조직체계까지 보고 또 봤다. 그리고 며칠을 앓았다. 먹은 음식은 제대로 소화도 안 되고, 몸은 뜨거웠다. 이 사건, ‘박혜진의 굴욕’이라 이름 붙였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도 학보사는 바쁘다. 학기 중 나갈 기사들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학 중에 처음으로 기획회의라는 것을 하고, 기사도 배분했다. 나의 첫 기사는 노동조합 기사였다. 이름하여 노동조합 ‘사과유감’. 학교에서 설 선물로 10만원 상당의 금품을 주기로 협약을 맺었는데 사과 한 상자씩을 돌렸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우선 노조위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학생들에게 알릴만한 내용이 아니란다. 까짓거, 위원장 아니라도 전화할 사람은 많았다. 노동조합원 명단을 들고 일일이 전화하기 시작했다. 더러는 아는 내용을 말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원장이 말하지 않으니 자신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한참을 취재하고 있는데 위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내 전화를 받은 조합원들이 위원장에게 계속 전화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말. “관심 좀 꺼주세요!” 기자보고 관심을 끄라니, 기막힐 노릇이었다. 그 사람 말 때문은 아니었고 데스크 회의를 거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로 방향을 조금 틀기로 했다. 물론 노동조합과 관계가 없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또 문제 발생. 어렵게 비정규직 피해자들과 약속을 잡으면 어김없이 다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시간은 계속 가고 제보자 하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데스크에서는 더 취재해 보라고 했다. 그러나 점점 뭐가 옳고 뭐가 그른 것인지, 누구를 비판해야 할지 가치판단이 서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그러한 혼란은 더 커져만 갔다. 결국 그 기사는 마감 며칠 전에 깨졌다.


어찌어찌해서 다른 기사로 마감을 하고 처음으로 ‘더 이상 기자를 꿈꾸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게 내 길이 아니어서 힘든 것인지, 원래 힘든 일이기 때문에 그런 건지. 생각하면 할수록 전자에 힘이 실렸다. 내가 한없이 무능해 보였다. 눈물은 자기치유의 묘약이라더니 하필 그 때는 그 흔해빠진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이름하여 ‘박혜진의 2.12 포기선언’이다.


학기가 시작되고 벌써 네 번째 마감이다. 내가 얼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잊고 그냥 달리고 있다. 여전히 힘들지만 시간은 내가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해결해 주었다. 상처들은 이제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다. 나는 변함없이 취재하고 기사 쓰면서 일주일에 꼭 하룻밤은 학보사에서 보내고 있다. 많이 힘들 때는 나오지 않던 눈물이 오히려 그때를 회상하는 지금 빼꼼히 두 눈에서 삐져나온다. 만만치 않은 이 곳 사회부에서 약해빠졌던 나는 조금씩?‘사회부스러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