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대생은 모르는 국내 유일의 이화표 강의? 다름아닌 ‘주제통합형 교양’이다.

2002년 본교에서 처음 개발된 이 강의는 원로 교수들이 10여 년에 걸쳐 구상해 틀을 갖춘 것이다. 이를테면 사회영역 주제통합의 경우, 어느 특정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사회학·심리학 등 사회과학의 전 분야를 두루 포괄하는 식이다.

그러나 주제통합형 교양 이수가 졸업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강의의 ‘의미’보다는 ‘의무’에 치중하곤 한다.

본사는 9일(목) 주제통합형 교양만을 강의하는 교무처 소속 조윤경(인문영역:21세기 문화와 상상력)·홍기령(사회영역:정보사회의 조직문화와 인간의 자아실현)·고인석(자연영역:과학의 지형도)·김애령(예체능영역:세계와 상징 예술 표현의 이해) 교수에게 주제통합형 교양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4개의 강의는 100여 편의 강의 제안서 중에서 채택된 교과목으로, 학생과의 피드백이 활발해 강의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 ­주제통합형 교양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김애령(이하 김) : ‘주제통합형 교양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갗는 교수들도 자주 토론하는 주제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는 자기 분야는 물론이고 타전공에 대한 안목까지 갖춘 사람이다. 따라서 주제통합형 강의는 다방면에 대한 소양을 강화시킨다는데 의미가 있다. 학점 이수가 당장 학생들에게는 의무와 부담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인문·사회·자연·예체능영역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조윤경 교수(이하 조): 요즘 학생들은 부전공과 연계전공을 많이 한다. 통합적 사유, 즉 깊이 있고 폭넓은 생각을 하려는 학생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다. 주제통합형 강의는 전공과 동떨어진 수업이 아니라 연결고리를 찾아주는 하나의 과정이다.

고인석(이하 고) : 일반 교양수업은 교수님들의 전공에 따라 수업의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에 학생들이 통합적인 감각을 익히기엔 아쉬운 점들이 있다. 똑같이 3학점을 듣더라도 그 영역의 총체적인 감각을 기를 수 없을까 해서 생겨난 것이 주제통합형 강의다. 다른 학교는 아직 이런 개념이 정립되지 않아 본교가 높이 평가받고 있다.

홍기령 교수(이하 홍): 대부분 미국 대학에서는 코어 커리큘럼(중핵교육과정)이라 하여 이런 형태의 강의가  마련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본교에만 이런 강의가 있는데, 이는 10여 년에 걸친 원로교수님들의 노력과 비전, 그리고 희망으로 완성된 것이다.

 

- ­왜 다른 교수들과 달리 4인 교수진만 교무처에 소속돼 있는가

김 : 주제통합형 교양이라는 과목의 목표 유지와 발전을 위해 이런 형태의 강의만을 전담하는 교수진이 필요했고, 이 교수진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교무처 소속 아래 둔 것이다.

고인석 교수(이하 고) : 네 사람이 하나의 팀이라는 소속감은 강점으로 작용한다. 강의를 하며 겪은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자주 의견을 주고받는다. 전공별로 각 과에 흩어져 있었더라면 이러한 상호작용은 어렵지 않았을까.

 

- ­각자 맡고 있는 주제통합형 강의에 대해 소개한다면

조 : ‘21세기 문화와 상상력’은 인문영역 주제통합교양 강의다. 지금까지의 인문학 수업은 원전 해석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와의 연관성을 찾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 수업은 ‘문화’와 ‘상상력’을 키워드로 현재를 보고 미래를 진단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발로 뛰는 인문학 수업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책 뿐 아니라 문학·영화·미술·사진 등 문화 자체를 교과서로 삼고 있다. 21세기 문화를 이끌어가는 여러 주체들의 상상력을 알아보는 과정은 리더가 되기 위한 특별한 훈련이 될 것이다.?

홍 : ‘정보사회의 조직문화와 인간의 자아실현’은 사회영역 주제통합 강의다. ‘행복한 사회인이 될 수 있는 잠재력 개발’을 목표로 정보사회의 조직문화를 소개한다. 변화된 사회 속에서 성숙한 자기 실현의 의지로 잠재력을 개발한다면 행복한 사회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 : ‘과학의 지형도’는 자연영역 주제통합 강의다. 평소 여학생들이 느끼는 자연과학에 대한 장벽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과학이라는 커다란 나라에 ‘지도를 그려보자’고 생각했다. 전반부에는 과학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후반부에는 이를 토대로 생명과학·인지과학 등 여러 분야의 ‘상호관계’에 집중한다.

미래사회에서는 과학기술에 친숙함을 느끼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화인이 일반 사원에 머물지 않고 CEO로 성장하려면 전체를 볼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하다. 과학에 대한 기존의 거부감을 버리고 통합적으로 사고해 한 걸음 다가서길 바란다.

김 : ‘세계와 상징, 예술표현의 이해’는 예체능영역 주제통합 강의다. 예술을 보는 눈, 즉 안목을 키우고 예술의 변모 과정을 시대적 배경과 함께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과거의 예술은 친근하게 느끼는 반면 동시대 예술에 거리감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유익한 강의가 될 것이다.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동시대 예술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작품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또 예술이 생산된 문화·역사적 상황을 고려함으로써 현대예술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어떤 이념과 맞물려 있는가를 살펴본다.?

 

- 주제통합형이라는 새로운 강의 형태에 이화인들은 잘 따라오나

홍: 한 번은 외부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수업이 끝나고 강사분이 “얘네들 숨은 쉬었어요?”라고 물어보더라. 이처럼 이화인들의 집중력과 정서적 안정은 놀라운 수준이다.

조 : 교수들이 수업시간에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무반응이다. 그런데 이화인들은 여느 대학 학생들보다 반응이 빠르다. 학생들의 발표를 경청할 때면 살아있는 수업을 하는 것 같아 보람차다. 날카롭게 질문이 들어올 때면 정신이 번쩍 나기도 한다.(웃음)

고 : 다른 학교에서 이 정도 규모의 대형 강의는 진행조차 어려울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강사생활을 오래했었는데, 이화여대생의 자질과 수업 태도는 최고라 말하고 싶다. 덕분에 대형 강의가 이 정도 수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김: 통합적인 내용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자질이 필요하다. 가장 크게 감탄했던 부분은 이화인들이 굉장히 뛰어난 기본 소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감사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 200명을 훌쩍 넘는 수강생들, 문제는 없는가

조: 주제통합형 강의는 대형 강의가 대부분이다. 처음 수업을 개발할 때는 소수의 학생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고자 했지만 지나치게 규모가 커지면서 개개인을 살피기가 어려워졌다. 자신을 익명의 존재라 여기고 소극적인 자세로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도 꽤 있는 것 같다.

김: 학생 수에 대한 문제는 늘 지적돼왔다. 교수들도 노력하고 있지만 수강생 모두와 대화할 수 없어 안타깝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 사이에 숨어 대충 한 학기를 보내겠다는 이화인들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한 것이라 여겨진다.

과제에 대한 고민도 계속되고 있다. 조금 더 다양하고 즐길 수 있는 과제를 주고 싶지만 개인적인 피드백이 어려워 제약이 많다.

학생들이 단편적 지식 습득, 그 이상을 얻어갔으면 좋겠다. 어려운 과목을 기피하는 자세로는 자신을 성장시킬 수 없다.

홍 :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모든 학생들을 하나하나 돌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잠재력이 뛰어난 학생들임에도 대형 강의라는 제약에 부딪쳐 적극적인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깝다. 또 주제통합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어 아쉽다. 학생 한 명씩 붙잡고 수업을 이해하고 있는지 직접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 ­이화인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조 : 나는 수업 마지막 시간에 ‘황홀하지 않은 것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대학 시절만큼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기는 없다. 수동적인 자세로 학문에 임하지 말고 수업을 통해 자신만의 ‘황홀한 시간’을 찾았으면 한다. 가만히 있다 보면 점점 위축되지만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표현한다면 점점 무르익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적극적인 자세로 수업에 임하길 바란다.

홍: 4년 동안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라. 실수를 두려워 말고 자신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를 극복하고 자긍심을 키워나갈 때 비로소?행복한 사회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 요즘 학생들을 볼 때면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팍팍한 현실에 눌려 영어·학정고시 등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학생들의 어려움은 십분 이해하지만 대학생활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한다. 보다 자유롭고 ‘흐트러진’ 자세로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각박한 현실마저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여유를 가져라.

고 : 가끔 타대에 비해 내부경쟁이 심한 것을 느낀다. 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이화 안팎에서 인지되고 있는 사실인 것 같다. 치열한 경쟁 분위기는 강점인 반면, 이것이 아웃풋(output)으로 연결되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여성운전자가 남성운전자에 비해 운전대와 몸의 거리가 가까워 시야가 좁다는 통계가 있다. 때로는 자신을 여유롭게 둘 때 세상을 보는 안목도 넓어지는 법. 이대생들의 단아한 성품과 높은 지적 수준을 잘 유지하되, 여유로운 사고로 한층 강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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