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가게에 심부름 갔던 허 모(11세)양이 동네 신발가게 아저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끔찍하게 살해됐다. 사랑하는 딸,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녀를 잃고 오열하는 가족을 보면서 국민들은 깊은 슬픔과 함께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정치권과 정부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21일(화) 성폭력 범죄자에게 위치추적 전자 장치를 부착하게 하는 ‘전자 팔찌’법안 통과를 강력히 주장했다. 같은 당 박세환 의원은 20일(월) 성 범죄자들에게 디포프로베라와 같은 약물을 투여해 화학적으로 거세시킬 수 있도록 하는 법안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허 모양의 집을 방문해 부모를 위로한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은 “위험도 높은 성 범죄자에 대해서는 지역 주민들에게 우편으로 통지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경찰청은 ‘국민생활 안전 확보 100일 계획’을 추진하고 법무부는 범죄자들의 야간 외출을 제한하는 제도를 확대 적용키로 했다.

 이처럼 부산을 떠는 정치권과 정부의 모습이 낯설지는 않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경쟁적으로 우후죽순 대책들을 쏟아내곤 했기 때문이다. 실제 작년 말 밀양 성폭행 사건이 터졌을 때도 정부는 후속 대책을 발표하고, 여야는 진상조사단을 울산에 파견했다. 

그러나 이처럼 수선을 떨며 내 놓는 법안과 제도가 과연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현재 ‘전자 팔찌’ 도입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인권단체들은 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전자 팔찌’ 도입은 극약 처방일 뿐 성범죄 근절에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용의자의 가게에서 벌어진 이번 허 모양 살해 사건만 보더라도 ‘전자 팔찌’와 야간 금족령이 과연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대책들도 타 부처와 조율해야 하는 등 남은 과제를 해결하기까지 산 넘어 산이다. 

지금은 실효성도 보장할 수 없는데다 논란만 가중시키는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할 때가 아니다. 성범죄와 재범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 제도를 보다 튼실하게 해야 한다. 이미경 한국성폭력 상담소 소장은 23일자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처벌 강화가 성폭력 재범율을 낮출 수 없다”며 “국회의원들이 보다 현실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가해자의 시군구 주소까지만, 그것도 1년에 2회만 공개되는 성범죄자 신상공개 제도를 범죄자의 세부정보를 모두 공개하고 접근권을 넓히는 등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고 출소 후 피해자에게 보복하는 일까지 있으므로 가해자의 ‘교정 교육’도 의무화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수사과정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법 개정도 시급하다. 선진국에 비해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지나지 않는 현행법의 문제를 개선해야함은 물론이다.

강력 성범죄가 발생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인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짝 해결책을 내놓기에만 급급하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곱고 여린 꽃들이 추악한 애욕에 무참히 짓밟혀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당정은 머리를 맞대고 성범죄 근절을 위한 현실적 대책을 지속적으로 진지하게 논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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