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학생운동은 제가 3학년(80년)일 때 가장 활발했죠. 특히 5월은 수업 일수의 절반 이상이 휴강될 정도로 열성적이었어요. 축제 마지막 날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화광장에 모여 민중가요를 불렀습니다. 학교에서 시위를 하는 날이면 경찰들이 교문 앞을 지키고 서있었어요. 하지만 우린 그 철통같은 진압에도 온몸으로 맞서 싸웠죠. 또 사회과학 동아리, 학회가 많이 생겨나 사회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이화인들이 많았지요. 하지만 학생 운동에 무관심한 학생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김경은(교공·82년졸)


“지금 학생들의 축제를 보면 안타까워요. 예전엔 학생들이 오고가는 길목에 지푸라기를 놓아 두었죠. 축제 때 쓰일 새끼줄을 평소에 미리 꼬곤 했거든요. 길을 지나가는 학생들이 만나 함께 줄을 꼬며 친목을 쌓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축제는 이화인이 다같이 참여하는 즐거운 행사였죠” 주정자(국문·90년졸)

 

“요즘이야 손가락 하나로 수강신청을 하지만, 우리 때는 직접 발로 뛰어서 했지요. 듣고 싶은 과목을 종이에 빽빽하게 써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를 돌아다녔답니다. 신청하러 가는 곳마다 얼마나 줄이 길던지 정말 대단했죠. 특히 진덕규 교수님의 일명 ‘빠져드는 강의(정치학 개론)’가 이화인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수업이라며 인기가 많았답니다” 원숙연 교수(행정학 전공·86년졸)


“옛날에 있었던 추억의 장소들이 사라져 아쉬워요. 이화광장 부근의 ‘신달수’라 불리던 큰 나무는 MT·축제 등을 갈 때마다 만남의 장소가 됐어요. 또 ‘이화교를 지나갈 때 기차 꼬리를 밟으면 사랑을 얻는다’는 소문이 돌아 이화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죠. 지금의 이화­포스코관 자리엔 드넓은 잔디가 있어서 학생들이 앉아서 김밥도 먹고 수다도 떠는 편한 공간이었습니다” 김영아(국문·90년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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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는 ‘학생운동’이란 단어를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시대다. 학교 밖에선 매일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이화 안에선 잦은 휴강과 수업거부 운동이 일어났다. 학생들은 이화광장에 모여 민중가요를 부르며 사회를 향해 한 목소리를 냈다.

당시의 이화인들은 공동체 의식이 강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동제 영산줄다리기·과별 장터·MT 등에 참가해 이화인이라는 자부심을 느꼈다. 과별로 농촌연대활동·야학 등의 활동을 통해 의식 교육을 배우기도 했다. 이러한 행사들 역시 사회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공부도 열심이었다. 이화인들은 자신이 배운 만큼 사회에 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기울였다. 지금처럼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과목으로 편식하기보다는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따라 수업을 선택했다. 학생들은 잦은 휴강으로 수업을 빠지는 날이 많았지만 지성인이 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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