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있는 자, 동냥질도 부끄럽지 않다. 시선의 노예가 되지 말라’

  ‘기자 소개란’에 쓸 말을 찾다가 일기장에서 발견한 글이다. 아마 어디선가 들었던 말을 내 생각과 섞어 놓은 것일 게다. 그렇다면 한번 돌아보자. 내가 학보사 기자가 된 후 얼마나 내 목표치에 도달해 있으며, 어느 정도 타인의 시선에 자유로워졌는지를.

  #나의 목표

  학보, 내 꿈을 향한 첫 걸음.

  방학일정과 한 번의 제작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내 기사로 인해 무언가가 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흥미롭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기계처럼 기사를 쓰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제발 1년이 지났을 때 기사에 찌들지 말고, 지금처럼 모든 상황을 신기해하고 재밌어했으면 좋겠다. 몸은 힘들지언정 정신은 지치지 말기를.

  그렇다면 나는 나의 목표를 위해 동냥질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열정을 쏟고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100%는 아니다.‘프로기자는 아니다, 그리고 난 학생이니까’이러한 자기합리화가 나의 열정에 발목을 잡고있다. 학생과 기자, 기자와 학생. 열심히만 한다면 둘 다 얻을 수 있으리라. 기자로서, 국문과 학생으로서 이제 시작이다. 정신차리고, 호흡을 가다듬고, 아자아자!

  # 타인의 시선.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아줌마’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뻔뻔하다. 그래서 나의 친구들은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 뭘 더 시키고 싶을 때 나를 이용하곤 한다. 이는 취재원을 대할 때도 유리하다. 예를 들어 포관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수다를 떨고 있으면 나는 우선 옆에 앉고 본다. 그래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함께 수다를 떨다가 원하는 멘트를 딴다. 흔하게 생긴 얼굴과 특유의 넉살.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재산이다.

  그렇다면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가? 이제까지 내가 말한 일종의 ‘뻔뻔함’은 겉으로 보이는 행동일 뿐이다. ‘인간행위와 사회구조’강의 중 교수님께서“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시선에 자신의 행동을 억제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는 학보사 안에서 막내로서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바깥에서는 학보사 기자로서 취재원에게 기죽지 말아야겠다며(특히 학교 관계자들에게 있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오기를 부린다. 어디서든 나쁜 소리 듣지 않으려고 행동하는 그 자체가 이미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주관만 타인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시선에 어느정도 얽매여도 괜찮다고 스스로 정당화한다. 이놈의 자기 합리화는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것인가.

  어찌 됐건 나는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나만의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설사 기자가 내 길이 아니라고 해도 후회는 없게끔 열심히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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