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핸드폰 주소록에는 ‘학교관계자’ 그룹이 따로 편집돼있다. 그렇다고 내가 학교의 교수·교직원이거나, 그럴싸한 직책을 맡은 유명한 사람은 아니다. 나는 그저 이대학보사 대학취재부의 정기자일 뿐이다. 그래서 남들 다 노는 방학 내내 등록금 간담회로 부지런히 학교를 들락거렸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모르고 졸업하는 처장단과 중운위의 얼굴을 깔끔하게 익혔다. 또 20년간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시위현장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내가 속하지 않은 단대의 동창회장들까지도 알게됐다.


그리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참 많다. 나이와 직책을 넘어서 배울점이 있고, 인간적으로 끌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학교관계자’ 그룹에 속한 번호의 주인들은 인위적인 만남으로 알게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나에게 무수히 많은, 그리고 몹시 어려운 ‘가치판단’ 꺼리를 제공한다.

등록금을 인상하는 것이 옳은가, 동결하는 것이 옳은가.
구조개혁을 중단하는 것이 옳은가, 진행하는 것이 옳은가.
심지어 내가 어떤 순간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옳은가, 가만있는 것이 옳은가-­까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럴때 나의 어깨 위에는 마치 삼척 거인이 올라 앉아있는 것만 같다. 그것은 나에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종류의 부담감을 제공한다. 손끝의 모세 혈관이 찌르르거리면서 약간의 공포감과 동시에 희열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상황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순간 나의 존재감이 극대화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지난 1월28일(토) 설 휴가 첫째날에 있었던 마지막 등록금 간담회는 이런 상황의 아주 바람직한 예라 할 수 있겠다. 이 날 간담회는 나를 그 복잡미묘한 부담감의 극단으로 끌고갔다. 총학생회장과 처장단은 정말 말 그대로 불꽃 튀게 대립했고, 나는 그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잠자코 지켜봤다. 종국엔 간담회가 결렬됐고,더 이상 학생회와 대화를 할 수 없게 된 처장단은 대신 자리에 남았있던 나와 교지편집위원에게 새로운 등록금 인상률 5.8% 확정을 알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느낌과 경험이 정신 건강에 좋을리 없다. 결국 내 몸은 나에게 부담감의 과부하가 걸리고 있음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 일은 간담회 바로 다음 날인 설날에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서있던 나는 구역질을 느끼더니 어느 순간 별을 보고, 다리가 풀려 쓰러지고 말았다.

부모님의 걱정은 꾸중으로 이어졌다. 속되게 표현하면, 좀 작작하라며.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몸이 상하는게 느껴져도, 내 시간이 침범당하는 걸 알아도, 그 미묘한 부담감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을. 오늘도 그 부담감을 온 몸으로 실감하며 나 자신도 이해못할 희열을 느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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