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대동제를 취재하다.
1996년, 대동제를 취재하다.
  • 이화영 기자
  • 승인 2005.11.2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가 어느 학교 학생이게요?”난데없는 질문이었다. 지난 겨울 여러 대학 학생들과의 모임에서 한 남학생이 물었다. 이어 그는 “힌트는 이대가 가장 싫어하는 학교예요”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나는 “아∼ 고대…”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당시 그 힌트를 보고 나는 어떻게 고대를 맞췄을까? 그것은 1996년 고대생 난동사건에 대한 이화인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일제 식민지 시대, 일본의 핍박을 겪지 못한 우리 세대도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공감하듯 말이다.


그렇게 어렴풋이 알던 고대생 난동사건에 대한 전말은 이번 취재를 통해 자세히 알게 됐다.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눈물이 고였다.
우리학교 대동제가 외부인 출입이 가능해지면서 고대생 폭력사건은 시작됐다. 그리고 1996년 당시 절정에 치달았다.


당시 우리학교 여성위원장 조혜련씨가 한국 성폭력 상담소 책자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나 1학년 때 그들은 자제를 요청하던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머리에 막걸리를 쏟아 부었다. 나 2학년 때 영산줄다리를 하는 이대생을 방해하고 총학생회장을 구타했다. 나 3학년 때 대동제 지킴이를 쿠타해 다리가 부러졌다. 나 4학년때 자제를 요구하던 교수님 차에 올라섰다’이어 1996년 절정에 달았던 사건에 대해 그는 ‘그들이 행사가 진행 중이던 운동장에 들어오면서 그곳은 곧 전쟁터가 되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1993년에는 고대생들 서너명에 의해 이화인 몇명이 머리채 끌려가 실신했고 1996년 400여명의 고대생이 영산줄다리기 행사 진열로 몰려와 난동을 피워 우리학교 학생이 팔이 부러졌다.
관련 기사 책자를 읽고 인터뷰를 통해 사건에 대해 듣는 내내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선배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취재하면서 눈물 보이는 기자가 어디있느냐’ 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러면서 그때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이대가 가장 싫어하는 학교라며 자신을 소개하던 남학생이 떠올랐다. 아무런 죄책감도 미안함도 없어보였다. 그리고 과거 그 남학생의 선배들은 더욱 자신의 잘못을 몰랐다.


고대생들은 85년 이후 부터 우리 학교 축제 때면 떼지어 몰려와 근처 숲에서 술을 마시다 여학생들을 향해 성적 농담을 던지고 몸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우리 학교가 잘못에 대해 추궁하면 주동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단순한 단결과 재미를 위한 것일 뿐’ 혹은 ‘이화여대생들도 좋아하는데… ’ 였다.


이 사건은 단순히 이대 고대 양 학교 사이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남성의 힘을 바탕으로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대 고대 편나눠 싸우자는 애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대 안 고대생의 난동의 여성사의 한 역사의 페이지를, 이화의 한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리고 그것을 그냥 모두가 기억해줬으면 한다.


여성을 짓밟고도 죄책감 없던 남성들의 의식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그 의식을 비난하고 원망하기 보다 바꿔나가는데 앞장서자는 말도 덧붙힌다. 의식을 바꾸는 일이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가 노력하고 내일의 다른이가 노력하면 그 다음에는 지금보다 많이 바뀔 것이다. 과거의 우리 선배가 노력하고 그 전의 다른이가 노력해 85년에서 2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바뀐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가 결혼할 때 쯤이면 가부장제로 똘똘 뭉친 마초 남성이 아닌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진정한 양성 존중 사회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