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우리에게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게 하소서!”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주인공 혜완은 스무살의 어느날 막연히 기원한다.
학보사 기자가 되기 전, 나는 항상 몸을 비비 꼬며 지루해했던 것 같다. 학교는 조용했고 친구관계도 그럭저럭 가족관계도 그럭저럭. 다람쥐 쳇바퀴돌 듯 사는 것 같아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만큼 강렬한 사건이 생기기를 바랬다.


혜완의 기원대로 그에겐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 아이가 교통사고로 죽었고, 남편과 이혼했다. 그는 이제 소원을 고쳐말한다.
“제발 무슨 일이든 아주 작은 거라도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학보사 기자가 된 후, ‘지루함’이란 단어를 완벽히 잊었다. 조용하다고만 생각했던 학교엔 온갖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예전엔 그저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구조조정, 총학선거 등 굵직굵직한 일이 터지면 나는 바빠졌다. 취재가 잘 안되고 힘겨울때면 학교가 좀 조용해 지길, 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랬다.


대학에 입학하여 1학기는 무슨 일이 일어나길 바랬고, 2학기는 무슨 일이든 일어나지 않길 바랬다. 지금와서 돌아보니 냉탕, 온탕을 드나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수습기자로서 마지막인 오늘 밤, 나는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기사를 작성한다. 지루하지 않아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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