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초록불로 바뀌자 자전거를 올라타는 순간 자동차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자동차는 자전거 앞 바퀴를 치고 지나갔다. 나의 재빠른(?) 운동 신경 덕에 자전거만 쓰러져 나는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너무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서있었다.

그런데 “끼익~” 하는 소리가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생생한 소리였기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됐다. 그 소리 덕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모른 척하고 50M 정도 계속 가고 있던 자동차도 멈춰 섰다. 그 운전자는 내게 다가와서는 괜찮은지 물어봤다. 나는 다친 곳은 없어서 일단 괜찮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운전자가 그냥 가버리는 것이었다. 어떻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는 건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서로 부딪혀서 내 자전거가 쓰러지거나 내가 넘어져도 그냥 가버리는 핀란드 사람들. 나는 그 때마다 당황하면서도 ‘이 사람 성격 한 번 더럽네’ 하고 넘기던 것이 계속 반복되자 ‘내가 동양인이라 무시하는 건갗 하는 자격지심으로 변해 있었던 거다. 이 쪽 사람들이 많이 무뚝뚝한 줄은 알지만 기본적으로 이래도 되나 싶었다. 그런 모든 감정들이 북받쳐 오르자, 나는 이 운전자를 따라가서 퍼붓기 시작했다.

“너 왜 나한테 ‘anteeksi’라고 하지 않냐? 미안하지도 않는 거냐?”
‘Anteeksi’ 는 내가 핀란드어 기초 코스에서 배웠던 ‘Sorry’의 핀란드 말. 이 사람은 너무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져서는
“아..안,,떽..씨…,”

라고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거기에 만족한 나는 다음부터는 신호를 좀 잘 보고 다니라고 나름 충고까지 준 다음 마치 교통순경인 마냥 가도 좋다고 허락(?)하고 차를 보냈다. 집에 와서도 약간의 분이 삭지 않은 나는 핀란드 엄마 Irma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다 했더니 Irma는 계속 웃고 만다.

그 이유인 즉, 핀란드에는 사실상 ‘Sorry’라는 말이 없다고 했다. ‘Anteeksi’는 굳이 번역하자면 ‘Sorry’가 될 수는 있겠지만 ‘Excuse me’의 의미가 강하다는 것. 때로는 ‘Sorry’가 될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보통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경우 핀란드 사람들은 그냥 서로 ‘오호!’ 라는 식으로 말을 하며 미안하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그만이란다. 그러니 나는 그 사람에게

“너 왜 나한테 ‘저기요~ 실례한데요’ 라고 왜 계속 말 안 하는 거야? ‘저기요~’하지도 않는 거냐?”
라고 화를 낸 어이없는 동양인이 되고 만 것이다.

아니, 미안하다는 말이 제대로 없는 나라가 있는 줄 알았나. 여러분, 핀란드 사람이 행여 미안하다고 하지 않더라도 화내지 마세요.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