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김미현 교수(국어국문학 전공)

“나는 레이스가 달린 팬티는 입지 않는다”라는 22살의 처녀와, “첫째, 하고 싶은 사람과/둘째, 하고 싶을 때/셋째, 안전하게 하자”가 섹스에 대한 원칙인 31살의 노처녀가 등장하는 소설이 있다. 신예 여성작가 정이현의 등단작 「낭만적 사랑과 사회」와 막 시작한 신문 연재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물론 등단작에서 다루는 ‘처녀인 척해서 상품가치 높이기’라는 주제는 신선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소설을 학생들에게 읽혀보니 ‘이화이언(ewhaian.com)’에 떠도는 이야기들과 별다를 바 없다는 반응도 나왔었다. 그리고 이제 한국의 신문 연재소설에서도 미국의 시트콤 드라마인 ‘섹스 앤 더 시티’의 멋진 여주인공 캐리가 등장한다.

하지만 예술 중에서 의외로 가장 느리고 보수적인 장르인 문학에서도 이런 도발적이고도 불온한 소설이 유수한 문학잡지의 등단작이 되고, ‘공중파’에 해당하는 신문에 연재된다는 사실 자체가 문학의 권위나 엄숙함에 대한 저항일 수 있다. 시대의 성감대를 생비자(生費者)의 입장에서 실감나게 그리는 것이 ‘트랜드형’ 작가인 정이현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가령 정이현의 소설에서는 치통이 경제적 가난의 환유가 아니라 키스의 장애요인으로 등장한다. 때문에 그 이전에 폭식증적인 사랑을 보여준 은희경의 소설이나 거식증적인 사랑을 보여준 배수아의 소설과는 탈낭만성이라는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정이현의 소설은 ‘웰빙식’ 사랑에 가깝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정이현 소설의 여성들은 성찰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한 연애를 당당하게 요구한다. 왜 우리는 단지 행복해지기 위해 사랑하면 안되는 것인가라는 당연한 질문이 이제서야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정이현의 소설은 이전 여성소설의 주류였던 ‘불륜소설’이나 ‘가정소설’에서 벗어났다는 것에서 젊은 세대 중심의 여성소설적 변모를 감지할 수 있다. 진정한 ‘연애소설’이니까. 이에 대한 평가는 소설 속 ‘달콤한 도시’에서의 ‘낭만적 사랑’ 속에 숨어 있는 ‘우울한 도시’에서의 ‘경제적 사랑’을 읽어내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생활에 깃든 미시 권력이나 자발적 종속을 비판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 장치가 단순히 쇄말주의와 관음증의 도구가 된다면 대중성과 상업성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을 쓸 때는 너무 적과 닮아서 적과 같이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런 위험이 정이현 소설과 문학을 동시에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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